오피니언 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발전은 발전하려는 의지에서 이미 결정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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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중앙일보 j에디터

대한민국에서 성공할 수 있는 요건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한 취업회사의 최근 조사 결과가 놀랍습니다. 아니, 놀랍기보다 불편합니다. 20, 30대 남녀 직장인들에게 물었더니 학벌, 외모, 경제적 뒷받침, 인맥, 집안 배경을 많이들 꼽더라는 겁니다. 모두 개인의 실력과는 직접적 관계가 없는 부차적 요소들입니다.

불편한 건 그들의 생각이 전혀 근거 없는 게 아니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다 느끼겠지만, 그리고 부끄럽지만 우리 사회가 아직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이야기지요.

 놀라운 건 우리 젊은이들이 여전히 그 틀에 얽매여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쨌다는 겁니까? 학벌, 외모, 경제적 뒷받침, 인맥, 집안 배경··· 이런 게 없는 사람은 이미 이 사회에서 성공이 불가능하니까 대강 살다 그 초라한 인생을 마쳐야 한다는 말입니까? 만약 그렇게 믿는다면 더 부끄럽고 한심한 일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젊은 직장인들이 내세운 조건이라는 게 모두 겉모습들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을 판단할 때 흔히 먼저 고려되는 요소들입니다. 스스로 진짜 실력을 드러내 보이기 전까지는 그게 실력일 수 있다는 얘기지요. 그래서 그것들이 다소간에 영향을 미치는 건 비단 이 사회뿐이 아닙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것에서 자유로운 사회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까지 그럴정도였으니까요.

 기원전 11세기께 이스라엘 백성은 판관 사무엘에게 자신들을 다스릴 왕을 세워달라고 요청합니다. 사무엘이 이를 전하자 하나님은 자기 말고 다른 임금을 섬기려는 이스라엘 백성이 못마땅하지만 허락합니다. 그러고는 벤야민 지파 사람 사울을 그들의 왕으로 지목하지요. 구약성경이 전하는 사울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그처럼 잘생긴 사람은 없었고, 키도 모든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은 더 컸다.”

 사울의 탁월한 외모와 그가 초기에 거둔 잇따른 승리들은 대중을 열광케 했습니다. 하지만 재앙으로 끝나고 맙니다. 사울은 서른 살에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됐지만 2년도 못 돼 블레셋의 군대에 패한 뒤 세 아들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지요.

 하나님도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인정합니다. 사무엘에게 털어놓지요. “나는 사울을 임금으로 삼은 걸 후회한다.” 그리고 왕위를 이을 후보를 찾는 사무엘에게 조언합니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나는 마음을 본다”는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 그 유명한 다윗이지요. 오 마이 갓! 다윗 또한 “볼이 불그레하고 눈매가 아름다운 잘생긴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두 번 실수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쳐 이스라엘을 구하고, 이스라엘 왕국을 재통일했으며 유대교를 확립했습니다. 하나님이 얼굴만 보지 않고 마음을 본 결과지요. 달리 말하면 다윗이 아름다운 겉모습을 넘어 자신의 진짜 실력을 증명해 보인 것입니다. 우리 젊은이들 생각대로 학벌이나 외모 좋은 사람들은 분명 이득을 볼 겁니다. 하지만 영원한 이득은 아닙니다.

다윗처럼 실력을 증명해 보여야 합니다. 사울이 패배한 것도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해 하나님한테 버림받은 까닭입니다.

 학벌과 외모 같은 조건들이 떨어지더라도 진짜 실력이 있으면 결국 인정받는다는 얘깁니다. 학벌과 외모가 떨어진다면 더 열심히 실력을 키우면 되는 겁니다. 그러지 못하면서 학벌, 외모 탓만 하는 건 실력 없는 자신을 위로할 구차한 핑계거리를 찾고 있는 겁니다.

‘구차한’에 밑줄 치십시오.

 말 난 김에 유대 율법에 대해 한마디 더 하겠습니다. 유대사회는 계급사회였습니다. 제사장은 일반 이스라엘 백성보다 우선권을 가졌지요. 이스라엘 백성은 혼혈인보다, 혼혈인은 유대교 개종자보다, 개종자는 노예보다 우선권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혼혈인이 율법을 배웠고 제사장이 율법에 무지하다면 그혼혈인은 제사장보다 우선권을 지녔습니다. 실력으로 학벌이나 신분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구차한’에 밑줄 치셨지요? 구차해지지마십시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발전의 큰 부분은 발전하려는 의지에서 이미 결정된다”고 말했습니다. 어려워서 시도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시도하지 않으니 어려운 거란 말입니다. 학벌이나 외모 같은 조건들을 뛰어넘는 실력을 갖추십시오. 시작은 더뎌도 도착은 빠를 겁니다. 만약 노력해도 끝내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과감히 박차고 나오십시오. 그곳은 미래가 없는 구차한 조직입니다.

이훈범 중앙일보 j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