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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국이 외국 금융회사 놀이터인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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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해 ‘11·11 옵션 충격’의 전모가 드러났다. 시장의 짐작대로 도이체방크 홍콩지점의 지수차익거래팀 3명이 뉴욕 도이치증권 글로벌 지수차익거래팀과 짜고 친 사건이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11일 풋옵션을 대량 매수한 후 장 마감 직전에 주식을 대량(2조4353억원) 매도해 448억7873만원의 시세차익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한국 도이치증권은 불공정거래 혐의로 검찰에 고발되고, 파생상품 거래 등 일부 업무에 대해 6개월간 영업정지처분을 받았다.

 금융당국의 조사 과정에서 도이치 측은 “통상적 매매이며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일반적 거래기법”이라고 버텼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면 다른 나라 시장에서 이처럼 한 적 있으면 내놔 보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뻔한 불법적 선행매매(先行賣買)를 첨단 금융기법이라 우긴 것이다. 그만큼 한국 시장을 우습게 본 셈이다.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도이체방크 홍콩법인의 한국 담당 이사였던 손모씨는 2004년 한미은행 주식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손씨가 파생상품에서 200억원대의 손실을 피하기 위해 장 막판에 대량 매수주문으로 주가를 조작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외국 금융회사들에 대한 차별은 금물이다. 그들은 공정한 대접을 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위법행위에는 확실한 증거를 바탕으로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 2004년 일본의 경험은 참고할 만하다. 당시 미국 씨티그룹은 자금세탁에 연루됐다가 일본 재무부로부터 1년간 4개 지점 영업정지라는 초강경 제재를 받았다. 콧대 높던 씨티그룹은 회장급 경영진 3명을 경질하며 무릎을 꿇었다. 이후 도쿄 시장에서 국제 금융회사들의 장난은 사라졌다.

 한국거래소는 한국 도이치증권 직원 1명에 대해 면직 또는 정직의 징계를 요구하고, 또 다른 직원 2명에 대해서는 감봉 또는 견책에 상당하는 징계를 요구했다고 한다. 또 시장 혼란을 초래한 책임을 물어 10억원의 제재금(制裁金)을 부과했다. 11·11 충격의 희생양인 하나대투증권도 손해배상 소송을 낼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외국 금융회사들은 여전히 시큰둥한 반응이라고 한다. 이번 사건이 도이치증권의 기업 이미지에 좋지 않을 뿐 영업에 미칠 타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철저한 수사로 확실하게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거래소가 “역대 최고액의 제재금”이라고 하는 10억원은 옵션쇼크로 챙긴 시세차익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검찰 수사를 거쳐 법원의 벌금형을 받아도 많아야 수십억원 수준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한국을 얕잡아 보는 외국 금융회사들의 불법행위는 더욱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다. 이제 정부는 위법 세력은 반드시 솎아낸다는 각오로 제도 보완에 나서야 한다. 선물·옵션 관련법을 개정해 위범행위자에게는 중형(重刑)을 내리도록 손질하고, 위법 회사는 아예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수준까지 제재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서울 시장이 외국 금융회사들의 놀이터가 돼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