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회장, 현대차에 826억 배상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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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계열사 부당 지원의 책임을 지고 826억원을 현대차에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그러나 법원은 정 회장 부자가 계열사인 글로비스 지분을 개인적으로 취득한 것에 대해선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1부(부장 여훈구)는 25일 현대차 주주 14명과 경제개혁연대가 “계열사 부당 지원과 글로비스 지분 취득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정 회장 등을 상대로 낸 1조900억원의 소송에서 “정 회장 등은 현대차에 826억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현대차가 ▶현대모비스의 부품 단가를 인상하고 ▶기아차가 지불해야 할 대금을 대신 현대모비스에 지불했으며 ▶글로비스에 물량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부당 지원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글로비스 지분을 현대차가 아닌 정 회장 부자가 인수한 것이 경제개혁연대의 주장처럼 회사의 사업 기회를 유용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회사의 사업 기회 유용(流用)은 지배주주 측이 회사가 아닌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에게 사업 기회를 제공해 회사나 주주에게 돌아갈 이익을 사적으로 가로채는 것을 말한다. 미국에서 발전된 법리로 현행 우리 상법에는 규정돼 있지 않다.

 재판부는 이날 판결에서 기회 유용 개념을 처음으로 적용했다. 재판부는 “현행 상법에 정해져 있는 ‘이사로서 회사에 충실한 의무’를 위반해 기회 유용을 했다고 보려면, ‘회사에 현존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사업 기회’를 유용한 경우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글로비스의 경우는 물류 업무가 현대차 생산 업무와 관련성이 있는 데다 현대차 실무진이 설립에 참여했다는 점만으로 구체적이고 현실적 사업 기회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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