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남수 3차장 ‘어설픈 첩보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국가정보원(국정원)이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 측으로부터 숙소 침입 신고를 받은 남대문경찰서에 직원을 보내 보안 유지를 요청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관계기사 2, 3, 4면>

서범규 남대문경찰서장은 21일 브리핑에서 국정원 직원 1명이 사건 신고 4시간여 만인 17일 새벽 3시45분 경찰서로 와서 상황실장(여성청소년 계장)과 강력팀장을 만났다고 밝혔다. 국정원 직원은 당시 경찰의 초동조치 내용을 듣고 “중요한 것 같으니 보안에 부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반 형사사건의 경우 국정원이 개입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경찰의 설명은 이번 사건이 국정원 정보활동의 일환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국정원 관계자는 21일 언론의 사실 확인 요청에 “절대 그런 사실이 없다. 아닌 것은 끝까지 아닌 것이다”며 강력 부인했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T-50 고등훈련기의 수출과 관련한 정보기관의 과잉 정보활동 때문에 벌어진 일로 안다”고 말했다. T-50 고등훈련기 수출은 원전과 더불어 이명박 대통령이 야심 차게 추진해온 ‘대통령 프로젝트’다.

국정원의 소행으로 확인될 경우 국가 정보기관으로서 치명적 실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유형의 정보 수집은 김남수 국정원 3차장이 관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3차장은 차관급으로 임명시 언론에 공개된다.

 이번 사건은 국내에서 외국 대표단을 상대로 정보 수집 활동을 하다 덜미를 잡혔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이 묵었던 롯데호텔 1961호 바로 위층에는 국정원 I.O.(현장 활동 요원)들이 머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전직 국정원 관계자는 “실패할 경우 큰 부담이 따르는 해외 공작 활동과 달리 국내에서의 외국인 상대 첩보 수집은 상대적으로 손쉽다”며 미숙한 대처를 지적했다.

조현오 경찰청장

최소한의 보안조치도 없이 어수룩한 첩보활동을 한 대목도 도마에 오른다. 3명의 요원 모두 호텔 내 고성능 감시 카메라에 맨 얼굴을 고스란히 남겼다. 노트북에 담긴 자료를 빼내려다 인도네시아 대표단원과 객실에서 맞닥뜨리는 믿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인도네시아 측에 되돌려준 노트북 컴퓨터에 10개의 지문도 남겼다고 남대문경찰서는 밝혔다. 민감한 정보활동에 제2, 제3의 대리인을 써 발각 시 부담을 회피하는 외국 정보기관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외교 소식통은 “괴한들이 잠입했던 곳은 인도네시아 경제조정장관의 보좌관 방으로 거기에는 군이나 방산 관련 자료가 없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사전 정보 파악에도 실패해 엉뚱한 곳을 뒤졌다는 얘기다.

뒤처리도 서툴렀다. 국정원 소행으로 지목되자 정부 관계자 입에서 “어느 국가나 국익을 위해 그 정도 첩보활동은 하는 것 아니냐”며 스파이 행위를 시인하는 듯한 말이 쏟아졌다. 지난해 1월 두바이에서 이슬람 과격단체 하마스의 간부 마흐무드 알마브후흐가 호텔 에서 살해될 당시 감시 카메라에 찍힌 범인들이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요원인 것으로 기정사실화됐지만 모사드는 아직 자신들과 무관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973년 8월 발생한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사건의 중앙정보부 개입이 확인된 것은 30년 뒤 외교문서 공개를 통해서였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21일 국정원 소행이라 해도 관련 직원들을 처벌해도 실익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익을 위한 스파이 활동을 법적으로 규제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영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