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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셰익스피어의 고민과 임기 4년차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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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셰익스피어의 걸작 『헨리 4세』에서 주인공 헨리 4세는 거대 권력을 짊어진 모든 왕들의 고뇌를 이렇게 표현한다. “왕관을 쓰고 있는 그 머리 위에는 항상 불안감이 서려 있다.” 임기 3년을 마치고 이제 후반기로 접어드는 이명박 대통령의 최근 심정도 이와 크게 다를 수는 없지 않을까.

 한국의 대통령은 두 얼굴의 대통령이다. 임기 전반에는 모든 주요 정책과 의제를 지배하는 제왕적 대통령으로서 의욕 넘치게 일한다. 하지만 임기 후반에 접어들면 여론, 언론 심지어 여당마저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게 되고, 대통령은 레임덕 대통령으로 내려앉곤 했던 것이 그간의 경험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아직 레임덕 증상이 노골화하지는 않았지만, 전임자들의 씁쓸한 후반기를 지켜봤던 대통령으로서는 지금쯤 고민과 고심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실 고민스럽기는 필자를 포함한 한국정치 관찰자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3년은 제왕적 대통령이 주도한 일련의 과정, 즉 ①창조적 파괴의 의욕적 실험 → ②진보 시민사회와의 충돌 → ③초기 목표의 타협과 현실적 수정이라는 순서를 숨가쁘게 밟아온 시간이었다. 이를 돌아보면, 남은 2년의 임기가 과연 어떤 궤적을 그려갈지를 예측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문제다.

 지지율이나 경제지표의 숫자만으로 지난 3년을 조망하고 미래를 점치기는 어렵다. 이명박 정부 초반기는 우리가 기억하듯이 강력한 대통령과 시민사회의 충돌이 주조를 이뤘었다. 대립과 타협의 수위를 좌우한 것은 대통령의 결정이었다. 임기 초에 시장친화적 경제정책, 한·미 동맹 강화 정책 등을 의욕적으로 추진한 것은 제왕적 대통령의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2008년 봄의 허니문 총선에서 압도적 다수의석을 얻은 대통령이 과거 정부의 유산을 지우고,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는 ‘창조적 파괴’에 나서는 것은 ‘역사를 의식해야만 하는’ 대통령의 숙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초반의 창조적 파괴의 실험은 2008년 촛불사태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진보) 시민사회와 문화적·정치적 충돌을 빚게 되었다. 다시 말해 기존 질서를 크게 부정하면서 강렬한 보수 의제로 나아가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이후 본격화된 중도실용-공정사회론은 대립 국면 이후의 자연스러운 선택인 셈이었다.

 실용 노선으로 전환하면서 지지율은 꽤 회복되었지만, 이러한 전환은 여전히 미완성이다. 무엇보다 대북정책은 여전히 강고한 보수주의의 틀에 갇혀 있다. 지금의 대북정책을 갖고서 과연 북한 내부의 급변사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면서 만일의 통일과정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까.

 실용 노선의 또 다른 문제는 우군(友軍)에 대한 설득과정이 거의 생략되어 있다는 점이다. 교육·주택·일자리 이슈에서 실용 대책을 쏟아내고는 있지만, 과연 정부는 자신의 지지층에게 이러한 전환의 철학이나 배경을 진솔하게 설명하고 있는가. 소통의 부재라는 비판은 멀리 상대편 진영에서 우레처럼 들려오는 것이 아니다. 정작 지지층 내부에서 조심스러운 수군거림으로 커가고 있다. 물론 이것이 더욱 위험하다.

 헨리 4세가 이미 400년 전에 갈파하였듯이, 권력의 버팀목이 어디서부터 흔들릴지 알 수 없기에 후반기 권력의 고민은 깊어가는 것이다. 결국 대답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우리는 역사가 그렇게 많은 것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따라서 임기 5년을 대표하는 핵심 목표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 후반기의 과제다. 우리나라의 발전단계에 맞는 공정한 경제사회 질서의 정착과 같은 큰 틀의 과제를 가다듬어야 한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이 상식을 얼마나 행동에 옮기는가에 따라서 이명박 정부 후반기의 성패가 좌우될 것이다. 그리고 그 성패는 장차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에도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