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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봉 뜨니 저도 많이 부르네요 … 신입생 환영회 때 딱 한번 가봤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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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 20년 대학로를 지켜온 김민기 대표는 “옛날엔 극단들이 연극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기획사들이 돈 놓고 돈 먹기로 접근한다. 그런 맥락에선 문화랄 것이 형성되기 어렵다”고 했다. 그래도 “극장 문 닫을 때까지 공연을 하겠다”고 다졌다. [연합뉴스]

‘문화 인큐베이터’란 수식어가 따라붙는 서울 대학로 학전소극장(현 학전블루 소극장)이 다음 달 15일 20돌을 맞는다. 학전은 ‘김광석 콘서트’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등 소극장 콘서트를 이끌었고, 15년간 공연한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한국 공연예술사를 새로 썼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 관련 자료는 오는 9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특별 전시되고, 근·현대 서울유산으로도 등록된다.

 학전은 배우의 인큐베이터이기도 했다. 20년간 학전에 오른 공연 중 70%가량이 기획공연이었다. 그 중심엔 김민기(60) 대표가 있다. 21일 대학로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별것도 아닌 일에 와주셔서 감사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20주년 공연 소개를 해달라.

 “학전 레퍼토리 공연 ‘지하철 1호선에서 고추장 떡볶이까지’가 다음 달 10~20일 열리고, 뒤이어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5-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가 22~30일 진행된다. 레퍼토리 공연은 2시간 40분짜리 ‘지하철 1호선’을 80분짜리 다이제스트판으로 보여주고, 2부에선 나머지 학전들의 레퍼토리를 소개한다.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5’에는 요새 한창 뜨는 세시봉의 이장희와 조영남 형이 참여하겠다고 한다. 학전 문 열던 1991년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오면서 통기타 음악이나 일반 가요가 완전히 죽던 해였다. 그때 갈 데 없는 가수들을 불러 소극장 콘서트를 시작했다. 대표적인 게 김광석이다. 학전의 두 축이었던 뮤지컬과 콘서트를 보여주는 거다.”

-요즘 세시봉이 인기다.

 “나는 출연을 안 했는데도 여러 군데서 인사를 받았다. 1971년 판(‘아침이슬’)을 내자마자 전량 압수되면서 가수로서 아무런 활동을 할 수 없었다. 세시봉에는 딱 한 번 가봤다. 대학 입학 신입생 환영회를 거기서 했다.”

-젊은층에게 옛날 음악 들려주는 공연은 안 만드나.

 “복고풍 가요프로를 어쩌다 보면 옛날에 가수 생활 하셨던 분들이 노래를 전혀 못 하는데 괜히 나와서 옛날 기분으로만 하더라. 노래 되게 못하더라…. 세시봉 그 양반들만큼 꾸준히 해온 사람들이 없다. 복고풍 프로그램은 그게 한계일 거다.”

-요즘엔 댄스에 아이돌이 대세인데.

 “대중음악의 취향이란 것이 아무리 댄스·아이돌로 가다가도 질리지 않나. 아날로그적 음악의 본령에 대한 욕구를 세시봉 콘서트가 대변한 것 같다. 대학로의 소극장 콘서트는 2000년대에 소강 상태였다. 이제 아날로그적 감성을 갖고 있는 젊은 음악인을 슬슬 소개해야 할 듯싶다.”

-눈에 띄는 뮤지션이 있나.

 “(학전이 기획했던) 김광석 추모 콘서트에 참여한 젊은 음악인이 그런 맥락에 있다. 이적, 지난해 학전에서 콘서트를 했던 루시드 폴, 몇 해 전부터 학전 어린이 무대 음악 감독을 맡고 있는 정재일 등이다.”

-경영 상태는 어떤가.

 “말도 아니다. 소극장이란 게 꽉꽉 차도 현상 유지다. 요즘 만들고 있는 어린이 공연은 작품당 4000만~5000만원씩 적자가 난다. ‘지하철 1호선’으로 모아뒀던 게 바닥났다. 20주년 기념 공연의 수익금은 어린이 무대 기금으로 조성할 생각이다. 지난해엔 국민은행에서 후원을 받아 학교에 찾아가서 공연을 했었다. 조명도 없고 무대는 형편없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그런 걸 본 적이 없고, 자기들의 이야기니까.”

-어린이 공연에 매달리는 이유는.

 “지금까지 한국의 어린이를 위한 물건은 전부 유아용이었다. 학전이 건드리기 시작한 건 초등학생부터 청소년까지를 대상으로 한다. 종전의 아이들 물건은 유아용에 판타지였다. 현실에 없는 붕 뜬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주입시키는 것이다. 학전은 리얼리티를 먼저 확보해 아이들이 작품을 보며 자기 스스로를 인식하게 하겠다는 노선을 세웠다.”

-좀더 설명한다면.

 “한국의 아이들은 취학하고 나면 학교, 학원, 게임, TV에서 제공되는 것만 접한다. 공연은 아날로그다. 배우를 직접 만나고 다른 관객과도 함께 한다. 고립된 게 아니다. 그것이 우리나라 취학 아동과 청소년에게 가장 부족한 면 아닌가. 아이들은 어떤 의미에서 약자다. 우리나라 교육 환경이 말도 안 되게 사람 잡는 거라서, 돈이 안 되는 걸 알지만 붙들고 있어야겠다는 소박하지만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20년을 끌고 온 원동력은.

 “바보 같으니까. 미련하니까. 촌티를 못 벗어서….”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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