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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번의 사고, 74번 바뀐 선두 …‘초보운전자’ 베인, 데이토나 500 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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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21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나스카(NASCAR) 스프린트컵 데이토나 500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한 트레버 베인(가운데)이 경기가 끝난 뒤 두 손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레이스를 펼친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데이토나비치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최대의 자동차 경주 나스카(NASCAR)의 2011년 시즌 개막을 알리는 빅 이벤트, 데이토나 500이 열린 21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데이토나비치의 데이토나 인터내셔널 스피드웨이는 괴수의 울부짖음을 연상시키는 엔진 굉음으로 들썩거렸다.

 2.5마일 트랙 200바퀴를 도는 804.672㎞의 레이스는 강한 자의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따름이다. 이날 데이토나비치에서는 일주일에 면도를 한 번만 한다는 테네시주 출신의 시골 청년이 가장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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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로지 43대의 머신과 43명의 레이서만 게토레이 듀얼이라 불리는 예선을 거쳐 출발선 위에 섰다. 그중에는 레이스 하루 전날 스무 번째 생일을 지낸 풋내기 트레버 베인(미국)도 있었다. 예선 성적에 따라 32번째 그리드에서 출발했고,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베인은 1991년생이다. 나스카 하위 레이스에서 주로 뛰었지만 우승해 본 적은 없다. 나스카 최상위 시리즈인 스프린트컵에는 지난해 다른 선수 대신 한 번 출전해 본 게 전부다.

 레이스는 16차례의 크고 작은 사고로 중단됐다. 43대의 머신 가운데 22대가 번갈아 1위 자리에 오르내렸다. 선두가 무려 74번이나 바뀌는 혼돈의 레이스였다. 시속 300㎞ 가까운 속도를 겨루는 승부지만 이날은 인내를 필요로 하는 지구전으로 시종했다. 그런 가운데 서서히 이변의 씨앗이 싹을 틔웠다.

 5시즌 연속 나스카 챔피언에 등극한 지미 존슨은 29바퀴째 벌어진 14대 연쇄 충돌에 휘말려 우승 경쟁에서 밀려났다. 예정대로 200바퀴만 돌았다면 우승자는 데이비드 래건의 차지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레이스 종료 직전 경고를 알리는 노란색 깃발이 올라가며 레이스가 연장됐다. 다시 녹색기가 올라오며 경기가 재개되는 순간 래건이 반칙을 범하며 레이스가 뒤엉켰다.

데이토나 인터내셔널 스피드웨이에서 미 공군 곡예 비행팀 선더버즈 F-16의 에어쇼가 열리고 있다. [데이토나비치 로이터=연합뉴스]

 이날 아침 베인은 명예의전당에 헌액된 원로 드라이버 데이비드 피어슨으로부터 “흥분하지 말고 앞만 바라봐라. 그리고 긴장을 풀고 레이스에 임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베인은 이 말을 충실히 따랐다.

 베인은 이때까지 한 번도 선두로 치고 나가지 않을 만큼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기회가 오자 주저하지 않았다. 205바퀴째 선두로 치고나갔고 추월을 허용하지 않았다. 3시간59분24초를 기록해 2위 칼 에드워드를 0.118초 차이로 제치는 순간, 146만2563달러(약 16억3500만원)의 상금이 그의 것이 됐다. 베인은 “농담 아냐?(Are you kidding me!)”라고 비명을 질렀다. 손에 땀을 쥐고 레이스를 지켜본 피어슨은 “150바퀴를 넘겼을 때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며 함께 기뻐했다.

 베인은 우승을 한 선수가 가야 할 빅토리 레인(Victory Lane)을 찾지 못해 잠시 허둥대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레이스를 펼친 건 처음이다. 오늘 밤은 한쪽 눈을 뜨고 자야 할 것 같다”고 감격스러워했다.

 미국인들은 데이토나를 두고 ‘위대한 미국인의 경주(Great American race)’ 혹은 ‘자동차 경주의 수퍼보울(Super Bowl of the race)’이라 부른다. 트레버 베인은 데이토나 500 역사상 최연소 챔피언이었다. 데이토나 500은 경기장 안팎의 팬 25만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또 하나의 아메리칸 드림을 완성해 냈다. 베인은 우승을 차지한 후에도 “우승을 만든 사람은 팀 동료다. 그들을 위해 내가 운전석에 앉을 수 있다는 게 기쁘다”고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한편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참가 차량이 세 번째 바퀴를 돌 때 2001년 대회 도중 사망한 데일 언하트를 기리려고 일제히 손가락 3개를 펴 하늘로 치켜들었다. 나스카에서 일곱 차례나 우승한 언하트가 3번이 새겨진 차량을 주로 몰았기 때문이다. 언하트의 아들 언하트 주니어도 이번 대회에 나왔지만 24위에 그쳤다.

이해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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