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게으름뱅이 복지’ 끝낸 영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복지의 효시인 영국이 결국 보편적 복지의 종언(終焉)을 선언했다. 영국 정부는 며칠 전 실직 수당과 아동수당을 줄이겠다는 내용의 복지개혁법안을 내놓았다. 일하지 않으려는 실업자에게는 실업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아동수당도 부잣집에는 주지 않기로 했다. 한 가정이 받을 수 있는 복지 혜택에도 상한선을 두기로 했다.

 영국이 이처럼 자존심을 구기면서까지 개혁하려는 이유는 자명하다. 보편적 복지를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가 나쁘기 때문이다. 영국은 국민의 조세 및 사회보장기여금 부담률은 국내총생산(GDP)의 40%나 될 정도로 높다. 그런데도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재정상태가 나쁜 국가 중 하나로 전락했다. 경제도 계속 침체상태다. 2009년에는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5%로, 대공황 이후 최악이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꼽히는 게 과도한 복지 부담이다. 일하지 않고 혜택만 받으려는 도덕적 해이 탓도 크다. 캐머런 영국 총리도 “다시는 일하는 게 잘못된 경제적 선택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힌 건 그래서다.

 물론 영국과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 우리는 아직도 복지의 사각지대가 많고, 지출액도 더 늘릴 필요가 있다. 영국이 줄인다고 해서 우리도 줄이자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건 영국이 복지 설계가 잘못된 걸 시인하고, 보편적 복지의 종언을 선언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일하는 복지를 주창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우리도 최근 몇 년 새 복지지출이 급증하고 있다. 보건복지 분야 예산은 2006년 56조원에서 지금은 86조원으로 60% 이상 늘었다. 복지 수혜 대상자도 2006년 394만 명에서 1000만 명으로 증가했다. 게다가 급속한 고령화 때문에 복지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게 자명하다. 지금부터 설계를 잘 하지 않으면 영국보다 더 심한 복지병을 겪을 수밖에 없다. 선진국 진입은 물 건너 갈 것이다.

 그런데도 야당 등 사회 일각에선 일하는 복지에는 관심이 없고, 무상 복지 주장만 되뇌고 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델은 일하는 복지, 지속 가능한 복지다. 그게 영국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