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자동차 안전, 기술인가 윤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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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나이토 겐지
한국 닛산 대표

비행기가 하늘을 날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현실화했다면 자동차는 좀 더 빨리 목적지에 다다르고 싶은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개발됐다. 자동차 기술 발전으로 효율성은 증대됐고, 인간은 삶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을 얻게 됐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운전자가 어느 정도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게 됐고 그에 대한 책임 역시 감수하게 됐다.

 1771년 프랑스의 니콜라 조셉 쿠노가 만든 최초의 증기기관 자동차는 시속 4㎞의 속도를 냈다. 자동차의 속도가 사람의 걸음걸이와 비슷한 당시의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대형 추돌사고는 발생할 수 없었다. 하지만 최초의 증기기관 자동차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후 240년 동안 자동차 기술은 발전을 거듭했다. 자동차 속도는 가장 빠른 동물인 치타의 몇 배로 빨라졌으며 운행되는 자동차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현재 자동차업체들은 안전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지만 사고를 완전히 피할 수 있는 안전한 차량은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았다. 이러한 원인은 로봇청소기를 예를 들어 단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로봇청소기가 아직까지 널리 사용되지 않는 이유는 모든 가능한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 안전기술도 마찬가지다. 안전기술을 포함한 자동화 요소의 핵심은 주변 환경을 통제하는 것인데 자동차 사고는 로봇청소기에 벌어질 수 있는 상황보다 더 많은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안전기술을 개발하는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발생한 사고의 원인과 인적·물적 피해를 집계한 통계에 근거해 사고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와 다른 상황이 너무 많다. 특히 운전자가 사고 순간에 맞닥뜨렸을 때 보이는 행동은 과학자의 예상치를 벗어나기 마련이다. 개발자가 인간이 공포에 휩싸여 행동하는 양상까지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해서다. 또 다른 어려움은 자동차 성능이 발전함에 따라 새 위험 요소들이 추가된다는 점이다. 결국 안전기술 개발은 언제나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그렇다면 이런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안전기술의 지향점은 어떻게 설정돼야 할까. 안전기술은 특정한 기술에만 의존해서는 다양한 위험 상황에 대처할 수 없다. 가령 사고 발생 시 에어백이 모든 사고에서 운전자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안전기술은 이처럼 단순한 단계를 넘어 폭넓은 부분까지 포함해야 한다. 위험 출현 이전에서부터 충돌 후 상황까지 단계별로 운전자를 보호할 수 있는 기술은 안전에 대한 포괄적 해석을 전제로 한다.

 결국 안전기술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운전자가 위험에 노출되는 빈도와 상황을 줄이는 것에 초점을 맞춰 적절한 기술을 통합하려는 회사의 철학이다. 이 철학의 핵심은 사고 위험을 운전자에게 인지시키거나 차가 스스로 이를 예방하고 이후에 발생하는 사고 순간에서도 탑승자는 물론 보행자의 안전까지 고려하는 것에 있다. 한 예로 일상에서 일어나는 교통사고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졸음운전을 방지하는 기술을 꼽을 수 있다. 운전자가 방향지시등 조작 없이 주행차선을 벗어나면 경고음으로 주의를 주고 이후에도 운전대를 조작하지 않아 차선을 이탈할 경우 각 바퀴의 브레이크 압력을 조절해 원래 주행하던 차선으로 돌아오도록 돕는 기술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기술을 통해 교통사고를 상당수 감소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안전은 이제 자동차회사에 있어서 기술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윤리적인 영역으로 봐야 한다. 비록 다른 기술에 비해 개발이 까다롭긴 하지만 다른 어떤 가치보다도 우선시돼야 한다는 점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운전자들의 운전 습관과 안전의식 개선을 위한 활동과 함께 자동차회사는 차량에 탑승한 소비자를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나이토 겐지 한국 닛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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