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시험 영어로만’ 법안 막은 한인 비제이 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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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조지아주 하원에서는 최근 조그만 ‘혁명’이 일어났다. 중진의원이 발의한 ‘영어로만 운전면허 시험을 보도록 한 법안’을 같은 당 초선의원이 무산시킨 것이다. 주인공은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한인 최초로 조지아 주 하원의원에 당선된 비제이 박(37·공화·사진)의원. 조지아주는 반이민 정서가 강한 곳이다.

 박 의원은 같은 당 소속의 중진의원이 ‘잉글리시 온리(English only·영어 전용) 운전면허법’을 제출하자, 한국어 등 외국어로도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한 수정안을 내 통과시켰다. 잉글리시 온리 법안이 무산되면서 운전면허 시험이 어려워질까 걱정하던 상사 주재원과 이민자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박 의원을 주 의회 의사당에서 만났다. 박 의원은 아홉 살 때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 1.5세로 일리노이대학 로스쿨을 졸업한 후 연방검사를 역임했다.

-잉글리시 온리 운전면허법을 반대해 수정안을 냈는데….

 “그 법안은 조지아주에서 한국어를 비롯한 14개 외국어 운전면허 시험을 모두 폐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운전면허 시험을 영어로만 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수정안은 14개 외국어 시험을 기존 방식대로 유지하되 교통신호 표시와 같은 일부 쉬운 문제만 간단한 영어로 바꾸도록 했다.”

-반대한 이유는.

 “무엇보다 부모님 세대를 생각했다. 지난해 한국어로 시험을 본 사람만 5000여 명이다. 잉글리시 온리 운전면허법은 주민의 교통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영어로만 시험을 본다고 해서 안전이 지켜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안전을 위한 근본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 또 기아차를 비롯한 외국기업이 조지아주에 몰려드는 상황에서 이런 법안은 반감을 줄 수 있다.”

-초선의원이 같은 당 중진의원이 낸 법안에 대한 수정안을 내기 쉽지 않았을 텐데.

 “법안을 낸 의원은 정치경력 20여 년의 제임스 밀스 의원으로, 평소 존경하는 분이다. 관계를 떠나 법안이 나쁘다(bad law)고 생각했다. 무엇이 주민을 위한 것인지 고민했다.”

-남부에서 그것도 백인 밀집지역에서 당선되기 힘들었을 텐데.

 “처음 선거에 뛰어들 땐 힘들겠다는 생각도 했다. 주민들을 직접 만나보니 그렇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람 사는 건 인종과 상관없이 모두 똑같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도 교육·직장·자녀문제를 고민하고 그런 문제가 해결되길 원한다.”

-연방검사였는데.

 “검사 시절 초기에는, 재판에서 이기면 기쁘지만 피의자 가족들의 슬픈 눈빛을 보는 게 힘들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그 눈빛을 의식하지 않게 되더라. 점점 냉정해지는 나 스스로를 고치고, 다른 방법으로 사람들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치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애틀랜타=LA중앙일보 장열 기자, 사진 신현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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