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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울창한 봉곡사 가 보셨나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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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소나무 향기 가득한 봉곡사로 향하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세상 시름이 잊혀질 듯 상쾌하다.

‘겨울이 다 되어야 솔이 푸른 줄 안다’. 여름에야 온통 나무들이 초록빛이지만 겨울철 소나무는 보란 듯 푸른 자태를 뽐낸다. 숲이 좋은 것이야 두 말하면 잔소리. 나무로 둘러싸인 길을 걷다 보면, 신선한 공기가 지쳐있던 온몸을 재생시킨다. 한 달 넘게 이어진 추위에 몸은 찌뿌듯해지기 마련. 느릿하게 걷다 보면 가슴이 시원해지고 머릿속까지 상쾌해지는 아산 송악의 봉곡사를 찾았다.

글·사진=조영회 기자

천안 불당동 시청 앞을 출발, 21번 국도를 달려 장재교차로에서 39번 국도로 갈아 탔다. 외암민속마을을 지나고 언덕을 넘어 송악저수지를 지나니 봉곡사로 향하는 표지판이 서 있다.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5분 정도 더 가니 주차장이 나온다. 여기까지 30분. 21번 국도가 비교적 한가한 오후 시간이라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가까이에 이렇게 멋진 곳이 있다니… 진작 와 볼 걸.’ 봉곡사 진입로에 들어서자 감탄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하필 겨울에 찾아온 것이 못마땅했지만 소나무 숲길에 발을 딛는 순간, 이내 겨울 소나무 숲에 푹 빠지게 됐다.

아산 송악면 유곡리. 봉황의 머리를 닮은 ‘봉수산(鳳首山)’ 자락에 위치한 봉곡사로 향하는 길. 이곳은 2004년 (사)생명의 숲으로부터 자연경관과 문화역사적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천년의 숲’에 선정(장려상)됐다. 이후 숨겨진 명소, 걷고 싶은 길로 입 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찾는 이가 많아졌다.

 구제역 공포가 여기도 예외는 아니었는지 ‘입산을 통제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소나무 길에서 봉수산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함께 둘러볼 수 없음이 아쉬웠다. 다행히 봉곡사로 향하는 이 길은 지날 수 있어 안심했다.

소나무 길 따라 700m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숲길에 들어섰다. 울퉁불퉁 혹이 달려 기이하게 생긴 참나무는 마치 근육을 자랑하는 보디빌더처럼 보인다. 길 따라 양쪽으로 족히 15m는 돼 보이는 소나무들이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며 포즈를 취한다. 마치 패션잡지에 나오는 모델처럼.

헌데 뭔가 어색하다. 나무 밑동에 전부 ‘V’자 모양의 흠이 있다. 언뜻 보면 하트 모양처럼 보인다. 일제강점기 석유 대신 연료로 쓸 목적으로 송진을 죄다 채취해 가면서 생긴 상처다. 소나무는 깊게 패인 상처 위로 비스듬하게 자랐는데, 세월을 이겨낸 것이 안쓰럽고 대견할 따름이다. 아픈 역사의 흔적은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너무나 또렷하다.

길 따라 걷노라니 바람은 멈춰 고요하고 솔잎 밟는 소리와 어우러진 산새소리가 정겹다. 분명 얼어붙은 줄 알았는데 숲가의 계곡은 물소리로 존재를 알린다. 나무 사이로 슬며시 고개 내민 햇살은 나무에 부딪쳐 입체감을 더한다. 길가의 바위에 하나씩 정성스레 쌓아 올린 돌탑엔 이 길을 찾은 이들의 간절함이 묻어있다. 갑자기 목탁소리가 숲 전체에 울려 퍼진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 나오는 스님의 불경 외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귀에 와 닿는다.

 입구에서 출발한 길은 700m 정도 지나 봉곡사와 만난다. 15분이면 갈 수 있는 멀지 않은 거리다. 소나무 길 끝 작은 돌다리 건너엔 봉곡사가 자리잡고 있다. 안내판에 신라 진성여왕(887년) 때 창건했다 하니 그 역사가 천년을 훌쩍 넘는다. 절은 엄중하기보다 오히려 소박하다. 뒤편의 대나무 숲이 푸근하게 절을 감싸고 있다.

이곳에서 다산 정약용은 1795년 실학자들과 함께 공자를 논하고 성호 이익의 유고를 정리하는 강학회를 열었다. 또 만공선사는 1895년 이곳에서 ‘세상의 모든 것이 한 송이 꽃(世界一花)’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사연도 많다.

5월이면 철쭉이 활짝

‘아스팔트가 아니라 흙길이었으면 좋았을텐데…’ 숲길을 내려가는데 승용차 두 대가 휙 하니 지나간다. 절까지 향하는 길을 포장한 모양인데 아쉽다. 소나무 향 가득한 길을 내려 오니 머릿속에 가득했던 잡념은 온데간데 없다. 무거웠던 어깨가 한결 가볍다. 문득 다른 계절 이 숲길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김홍언 아산시 산림경영팀장은 “봉곡사 숲은 우리나라 토종 소나무 천연림으로 수령이 100여 년쯤 됐다”며 “지난해 이곳 500여 그루의 소나무 주위에 산철쭉 5000본을 심고 계곡에 사방댐을 만드는 등 아름다운 숲을 가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5월이면 철쭉이 필 텐데 그때는 더 아름다울 것”이라며 꼭 다시 찾길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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