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설겆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15면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을 전후해서는 주부들과 명절증후군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언론에 등장한다. 특히 많은 손님을 치러야 하는 큰 집안일수록 주부들의 할 일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음식상을 차렸다가 치우고 나면 금방 다음 끼니때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여자 쪽에서는 조리만으로도 힘드니까 ‘설겆이’는 남자들이 해줬으면 하고, 남자들은 “매일 직장에서 시달리다가 모처럼 쉬는데” 하며 섭섭한 눈치다. 하지만 이런 남성들의 변명도 점점 통하지 않게 될 듯하다. 그럼 앞으로 남자들도 ‘설겆이’를 해야만 할까. 안 해도 된다. 하지만! ‘설거지’는 해야 한다.

 먹고 난 뒤 그릇을 씻어 정리하는 일을 ‘설겆이’라고 표기하는 사람이 많지만 ‘설거지’가 표준어다. 표준어 규정에는 “사어가 돼 쓰이지 않게 된 단어는 고어로 처리하고 현재 널리 사용되는 단어를 표준어로 삼는다”라는 항목이 있다.

 ‘설겆다’는 ‘설겆어라, 설겆으니’와 같은 활용형이 쓰이지 않기 때문에 버린 것이고 따라서 ‘설겆+이’의 형태도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설거지’를 명사로 처리해 ‘설거지+하다’를 표준어로 인정했다. ‘애닯다’를 버리고 ‘애달프다’를 쓰는 것도 이 규정에 따른 것이다.

김형식 기자

▶ [우리말 바루기] 더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