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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 차장 박용석 “정의감 지나치면 잔인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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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박용석

“인자함은 지나쳐도 괜찮지만 정의로움이 지나치면 사람을 잔인하게 만든다.”

 북송시대 시인 소동파(蘇東坡·1037~1101)가 한 말이다. 박용석 대검 차장검사는 최근 이 말을 인용해 검찰 특수수 사가 정의를 앞세워 마구잡이식으로 진행될 때 나타나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법무연수원 소식지인 ‘로하스(LOHAS)’ 창간호에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특별기고문을 통해서다.

 박 차장은 기고문에서 “초임 검사 시절 ‘독일병정’ ‘진돗개’ 등의 별명을 들으며 전국 검사 중 최다 인원을 구속하고 기고만장하던 시절이 있었다”며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정의 실현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는 긴 세월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그는 “검사가 압수수색·계좌추적·통화내역조회라는 수사의 삼총사를 갖고 올인하다 보면 모든 게 의심스러워 보이고 수사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다”며 “그 과정에 한 개인이, 기업이 장시간 동안 엄청난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무리한 수사는 무죄를 양산하고 심각한 후유증을 야기하는 만큼 수사의 성공이 ‘정의 실현’이라는 착각에서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수사를 “환자의 환부가 여러 곳에 있다고 해서 한꺼번에 수술하다가 환자를 도리어 사망케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비유했다. ‘구식 칼잡이 검사’처럼 독선적인 수사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다.

 박 차장은 “지체된 정의는 불의보다 못하다”며 신속한 수사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그는 “아무리 열심히 수사해도, 수사로 정의를 실현한다고 해도 국민들 눈에 그렇게 비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며 국민과의 소통 필요성을 강조했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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