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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서울, 2011년 카이로, 평양은?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혁명은 최고의 극적 드라마다. 인간 상상력의 한계를 단숨에 깨버린다.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혁명은 때론 희열 가득한 승리의 기록이 된다. 그러나 대부분 피비린내 물씬 나는 좌절의 역사로 남는다. 그 장엄한 드라마 속에서 실존(實存)의 다양한 모습들이 드러난다. 유혈진압이냐 아니면 퇴진이냐, 나와 가족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이냐를 고민하는 독재자는 더 이상 전능의 존재가 아니다. 나약할 인간일 뿐이다. 승패가 불분명한 싸움에서 끝까지 투쟁할지, 아니면 타협할지를 고민하는 혁명세력의 지휘부도 마찬가지다. 어디로 번져갈지 모르는 혁명의 불꽃 앞에서 모두는 약한 존재가 된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30년 철권 통치가 마침내 무너졌다. 시위가 시작된 지 불과 18일 만이다. 이집트 근현대 역사상 최초로 민중이 봉기한 사건이다. 1만1000일의 독재가 이렇듯 빨리 무너지리라곤 대부분 예상 못했다. 분노한 민중이 창출해 낸 저항의 에너지는 그만큼 강렬했다. 민중봉기의 성지가 된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수십만 시위대의 모습은 우리를 24년 전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데려간다. 양국의 민주화 과정에는 지구 반 바퀴를 도는 공간의 격차와 20년이 넘는 시간의 차이를 뛰어넘는 유사성이 뚜렷이 존재한다.

이집트의 ‘나일 혁명’을 주도한 것은 대학생을 주축으로 한 젊은 세대였다. “키파야”(이제 충분하다)를 외치는 대학생들에게 시민이 동조하면서 혁명의 봇물은 터졌다. 택시 운전사들이 일제히 경적을 울리는 광경도 24년 전 서울과 똑같다. 최루탄에 맞아 피 흘리며 실신한 연세대생 이한열군의 모습은 경찰에 감금됐다가 풀려난 뒤 눈물을 흘리며 기자회견을 한 와엘 고님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비슷한 유형의 극적 반전도 있었다. 무바라크가 퇴진할 수 없다고 버티다 전격 사임하는 모습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호헌을 고집하다 불시에 개헌을 수용하는 과정을 압축한 것 같다. 무바라크 이후를 2인자인 술레이만 부통령이 수습하고 있는데 전두환 퇴임 이후의 노태우 전 대통령을 생각나게 한다. 무바라크나 전두환이나 모두 죽어도 국내에서 죽겠다며 해외 망명을 거부했다.

하지만 한국과 이집트 두 나라의 민주화 과정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바로 경제다. 1987년 당시 한국은 급속한 경제 성장을 하고 있었다. 대학가에 최루탄 연기 가실 날 없고, 도심은 시도 때도 없이 시위 행렬에 마비돼도 기업들은 성장했고 수출은 날개를 달았다. ‘빵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불만에서 출발한 이집트와의 차이점이다. 군사정권이 독재로 비판받으면서도 예외 없이 경제 성장에 전심전력을 기울인 것은 한국적 특징이다. 혁명과 반혁명이 교차하면서 나라가 거덜난 다른 개발도상국들과 달리 한국은 비교적 순조로운 민주화 과정을 밟았다. 경제적 토대가 튼튼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집트 ‘나일 혁명’의 미래는 불안하다. 중산층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민중 혁명은 극단주의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1986년 필리핀 마닐라의 피플파워와 87년 서울의 넥타이 부대로 상징되는 민주화 혁명은 그 뒤 20여 년간 지구촌 여러 지역을 방문했다. 89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벨벳혁명, 2003년부터 시작된 동유럽의 장미(그루지야), 오렌지(우크라이나), 튤립(키르기스스탄) 혁명이 그랬고, 이제는 아프리카의 튀니지와 이집트에도 바람이 불고 있다. 간혹 주춤대거나 절뚝이기도 했지만 자유를 향한 역사의 행진은 이어지고 있다. 레바논 작가 파와즈 트라발시는 “모든 (독재)정권이 떨고 있다. 독재자들은 점점 더 약해지고 있다. 혁명은 이제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북한 세습정권은 올해로 65년째다. 지구상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도 모자라 20대 아들에게 3대 세습을 추진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절친한 친구였던 이집트 무바라크 대통령의 하야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그 어떤 권력으로도 오는 봄을 막을 순 없다. 평양의 봄도 멀지 않았다. 제방이 무너지기 전에 물꼬를 터야 한다. 그래야 더 큰 비극을 막을 수 있다.

김종혁 kimc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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