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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하고 사려 깊은 나비 의자의 비밀- 야나기 무네요시에서 일본 디자인의 혼을 찾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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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호 02면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일본국제교류기금,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和: 일본 현대디자인과 조화의 정신’ 전시가 시작됐다. 서울 순화동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문의: 02-2046-8500)에서 열린다. 야나기 소리, 후카사와 나오토 등 일본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들의 작품 161점이 출품됐다. 주방용품·욕실용품·가전제품 등 12개의 기능별 카테고리를 ‘귀여운’ ‘공예적인’ ‘결이 고운’ ‘감촉이 있는’ ‘미니멀한’ ‘사려 깊은’이라는 6개의 키워드로 풀어냈다.

‘和: 일본 현대디자인과 조화의 정신’전, 12일~3월 19일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

이 전시는 일본 디자인의 경쟁력을 전통적 미의식과 진보된 기술의 융합인 ‘和’ 스타일에서 찾는다. ‘和’ 스타일의 핵심에는 민예사상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1889~1961)가 있다. 그는 1920~30년대 ‘민예운동’을 일으켜 보통 사람이 사용하는 일상 공예품에서 실용적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거기에 기초한 디자인론인 ‘모던 재패니즘 디자인’을 주창한 사람이다. 산업 기술과 수공예가 함께 발전할 때만 문화적 진보가 있다고 보았다. ‘손을 움직이는 공예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의 사상은 장남인 일본 공업디자인 1세대 디자이너 야나기 소리(柳宗理95)에게 계승됐다. 야나기 소리의 대표작 ‘나비 의자’(사진 10)는 ‘和’ 스타일의 상징이다. 1956년 야마가타현의 공방과 손잡고 개발해 지금까지 생산되고 있는 이 의자는 스위스의 명품 가구회사 비트라 컬렉션에도 소장된, 현대 일본 디자인의 원형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나비 의자의 특징을 네 가지로 분석해 ‘和’ 스타일의 실체를 들여다봤다.

절제의 미학 ‘미니멀리즘’
‘나비 의자’를 규정하는 것은 구부려진 두 장의 나무판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국기 히노마루로 상징되는 일본의 대표적인 미의식과 상통한다. 극도의 단순함에서 추출된 이 의자의 아름다움은 50년이 넘어도 한결같은 사랑을 받으며 ‘미니멀리즘’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웅변한다. 40년 동안 한 번도 디자인이 변하지 않았다는 ‘깃코만 간장용기’도 마찬가지다. 후카사와 나오토의 ‘가습기 버전3(사진 3)’ 역시 본연의 기능 이외의 군더더기를 일체 더하지 않은 미니멀 디자인의 전형이다. 시라키쓰쿠시 도시락(사진 1)과 주토시리즈 IH전기밥솥(사진 2)은 삼나무를 잘라 구부려 만든 전통적 디자인의 도시락통이 그 간결함으로 인해 시대를 초월한 미적 가치를 가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세심한 마음 씀 ‘배려’
‘나비 의자’의 또 다른 특징은 두 장의 나무판을 연결하는 나사 부위까지 차가운 느낌이 들지 않도록 궁리한, ‘섬세한 배려’다. 일본에는 ‘식(食) 가위’란 것이 있다. 치아가 약한 노인이 여행을 갈 때 선물하곤 하는, 음식을 자르는 휴대용 미니 가위다. 모처럼의 산해진미가 그림의 떡이 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사려 깊음의 상징이다. 과밀화된 주거환경에서 이웃을 방해하지 않고 연주할 수 있도록 고안된 ‘사일런트 기타(사진 5)’, 태생적으로 끝이 뾰족할 수밖에 없는 핀 하나도 손 다칠 염려가 없도록 궁리한 ‘말랑말랑핀(사진 4)’ 역시 세심한 마음 씀이 느껴진다. 재사용 포장재 ‘오쿠린’은 선물을 받는 사람이 포장재를 버리지 않고 다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쓰레기를 줄인다는 점에서 환경에 대한 배려로 직결된다. 태양열 충전장치가 들어있는 건전지 ‘에네루프’는 1000회 이상 반복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2006년 굿디자인상을 받았다. 충전식 자동차 개발의 계기를 마련한 ‘환경 배려의 디자인’이다.

원 바탕을 살리는 ‘날것의 미학’
‘나비 의자’는 목재에 어떤 덧붙임도 없이 나무 자체의 멋을 살리는 데 주력했다. 음식에 있어서도 일본 요리는 신선한 재료를 구해 양념을 많이 사용하지 않고 재료 자체의 맛을 살리는 데 집착한다. 롤랑 바르트는 『기호의 제국』에서 ‘날것의 상태’가 일본 요리에서 수호신과 같다고 했다. 소재 자체가 갖는 자연의 맛과 멋을 추구하는 것은 디자인에서도 마찬가지. 원통형의 인감을 보관하는 ‘도장집(사진 7)’은 걸쇠와 경첩 모두 나무로 만들었다. 30여 년 동안 목제품 시리즈를 만든 장인의 작품으로, 자연의 감촉이 세월과 함께 가치를 더하도록 견고하게 제작됐다. ‘바람개비 와파등(사진 8)’은 아키타현의 나무를 구부리는 전통 기술이 적용된 조명 기구. 나무에 칠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무가 숨을 쉬며 뿜어내는 향기가 조명과 함께 시각과 후각을 자극한다.

공예와 산업의 마리아주
야나기는 ‘나비 의자’를 만들기 위해 야마가타현의 공방과 연대했다. 도시 디자이너와 지방 공방의 협업이라는 최초의 시도다. 그가 ‘和’스타일의 원점에 있는 이유다. 90년대 이후 일본에서는 새로운 소재를 찾으려는 디자이너와 지방산업을 활성화하려는 지자체의 다양한 결합이 본격화됐다. ‘쓰루야쇼텐’은 메이지 말기부터 등나무 제품을 제작했던 업체. 70~80년대 등나무 가구가 유행하면서 일시적인 호황을 누렸지만 유행이 지나가자 위기에 봉착했다. 하지만 지자체의 알선으로 도쿄의 최첨단 디자인 회사 토네리코와 협업하면서 혁신적인 디자인의 등나무 제품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고토리’는 ‘교와가시’라는 일본 전통 우산의 구조를 변형한 조명이다. 교토의 우산공방과 젊은 디자이너가 손잡고 우산의 접히는 특성을 살려 계절에 따라 색색의 갓으로 교환할 수 있게 만들었다. 소니의 공업디자이너 출신 아시토미 다카시의 대나무 식기 세트 ‘다케 커틀러리(사진 9)’는 서양 식기에 대나무 젓가락과 같은 자연의 감촉을 덧입히고자 전국의 공예가를 물색해 제품화한 경우다.

좋은 디자인은 이미 있다, 아직 찾지 못했을 뿐
이번 전시의 구성은 일본 디자인의 최신 트렌드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배경에 있는 사상을 돌아보기 위한 것이다. 오늘과 같은 디자인 발전의 바탕에는 전통공예를 통해 면면히 이어온 일본의 미의식이 있었으며, 새로운 디자인의 한계에 봉착한 지금의 방향성은 다시 전통공예와의 조화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디자인과 공예의 만남이 산업과 공예가 함께 상승하는 ‘조화의 길’임을 호소한다.최근 우리나라도 ‘한(韓)스타일’을 표방하고 전통공예 다시 보기 같은 움직임이 대두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과의 조화라기보다 공예는 공예의 틀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일본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사카이 나오키는 한 칼럼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한국의 디자인은 라이벌을 이기기 위한 상대적 디자인으로, 자신들이 보유한 절대적 개성을 표현하려는 사고방식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디자인을 장사의 도구로만 여겨 경쟁사를 이길 만한 ‘어디에도 없는 획기적인 디자인’ 찾기에 열중하지만, 좋은 디자인이란 이미 세상에 다 나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우리의 멋과 개성도 이미 오래전에 세상에 나와 있다. 디자인을 통해 그것을 어떻게 우리의 아이덴티티로 구축해 내느냐의 과제가 남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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