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유가안정 협력” 발언에 정유업계 속앓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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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고유가’의 주범으로 지목받아온 정유업계의 고민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구자영 SK 이노베이션 사장이 10일 “정부 방침에 분명히 협력하겠다”고 밝히면서다. 정부가 비싼 기름값의 원인 제공자로 정유사를 지목한 이후 업계의 공식 입장은 “정책 논의 결과를 지켜본 후 결정하겠다”였다. 하지만 구 사장의 발언 이후 “업계 1위인 SK가 협조하겠다는데 결국 우리도 따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쪽으로 분위기가 기울고 있다.

 하지만 논란의 여지는 남았다. ‘기름값 인하’ 부분에서다. SK 이노베이션조차 “정부에 협조하겠다는 말이지 기름값을 내리겠다는 뜻이 아니다”며 기름값 인하를 극구 부인하고 있다. ‘박리다매’로 수익을 내는 정유업의 특성 때문이다. 정유업계는 L당 영업이익이 적어 가격 인하의 타격이 크다고 주장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까지 4개 정유사의 정유부문 영업이익은 9614억원이다. 전체 매출액(63조3852억원)의 1.5%다. L당 9.1원꼴이다. 석유협회 관계자는 “L당 10~20원을 내려도 소비자들의 성에 차지 않고 정유사들은 수지에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차라리 수익의 일정 부분을 사회에 환원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소외계층을 위한 에너지 사업으로 쓸 수 있도록 기금을 조성하는 것이 현실적인 해결책이라는 설명이다. 선례도 있다. 2008년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 고공행진을 했을 때 4개 정유사는 “특별기금 1000억원을 조성해 에너지 소외계층을 위해 쓰겠다”고 발표했다. 2009년에는 310억원의 기금을 모았다. 지난해는 정유사들이 정유 부문에서 적자(-03%)를 낸 탓에 기금 조성액이 83억원에 그쳤다.

 업계는 “내가 회계사 출신이다. 직접 원가 계산을 하겠다”는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의 발언에 대한 불만도 크다. 한 업계 관계자는 “2008년 기름값 폭등 당시 지경부가 에너지경제연구원에 원가 계산을 하라고 연구용역을 발주해 놓고 조용히 덮은 적이 있다”며 “정유사가 국내에 팔 때 L당 4원, 수출할 때 L당 12원의 마진을 남긴다는 결론이 났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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