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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보수 기독교단 거듭나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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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세상에 밝은 빛을 주어야 할 종교가 부끄러운 모습을 잇따라 보이고 있다. 부목사가 목사를 폭행하고, 신자들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이는 추문이 이어지더니 마침내 ‘돈 선거’를 폭로하는 양심선언까지 나왔다.

 우리나라 보수 교단을 대표하는 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회장에서 물러나는 이광선 목사가 9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한기총 회장 선거에서 돈 선거로 당선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깨끗한 선거를 하면 반드시 패배하는 것이 현재의 한기총 선거 풍토”라고 개탄했다. 이런 고질병을 고치기 위해 곪은 상처를 터뜨렸다는 취지다. 교회 개혁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겠다는 그의 다짐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교단 내 파벌 간의 알력이 깔려 있다. 보수 교단을 대표하는 거대 종파인 대한예수교장로회에 속하는 양대 파벌인 ‘합동’ 측과 ‘통합’ 측이 회장 자리를 놓고 싸워 왔다. 연초부터 회장으로 새로 뽑힌 길자연 목사의 자격 시비가 이어져 왔다. 그 와중에 길 목사의 반대편에 속하는 이 목사가 사실상 ‘길 목사가 돈 선거를 했다’는 주장을 들고 나온 셈이다.

 어느 쪽을 편들 수 없는 이전투구(泥田鬪狗)에 고개를 들기 민망하다. 오죽했으면 한 기독교 인터넷 언론이 ‘해적들의 싸움’이라고 비유했겠는가. 싸움의 바닥을 들여다 보면 세속과 다름 없는 물욕(物慾)과 명예욕(名譽慾)이 득실거린다. 물신(物神)숭배를 경계해 온 종교계에서 어찌 이런 노골적인 이율배반(二律背反)을 보일 수 있을까. ‘하나님과 돈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는 성경의 가르침은 어디로 갔는가. 세상을 정화(淨化)하지 못하는 종교는 본래의 존재가치를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훌륭한 목회자도 많다. 하지만 한기총 회장은 보수 교단을 대표하는 가장 높은 자리다. 이제 그 자리에까지 만연한 타락상이 곪을 만큼 곪아 스스로 세상에 치부를 드러냈다. 더 이상 감출 수도 없고, 감춰서도 안 된다. 왕도는 없다. 목회자는 물론 모든 기독교도들이 ‘죽음의 벼랑 끝에 섰다’는 절박감에 떨치고 일어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