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햇살론은 되레 역차별 … 신용불량자 더 만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무상급식은

▶이승훈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학교 급식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식사 자체는 학생 개인이 소비하는 민간재이지 공공재가 아니다. 급식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학생에게도 무상으로 급식하려면 그만큼의 재원을 더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

공정거래위는

▶최광 한국외국어대 교수

“공정거래위원회의 ‘물가기관’ 선언은 본말이 전도된 발상이다. 거악(巨惡)을 파헤쳐야 할 대검찰청 검사가 좀도둑을 잡겠다며 골목길에서 잠복근무하는 격이다. ‘경쟁촉진위원회’로 이름을 바꾸는 걸 검토해야한다.”

대기업은

▶조윤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재벌들의 신규투자를 막는 출총제는 이미 거의 완화돼 있어 신규투자 제한 효과는 미미하다. 정부가 재벌 문제의 한국사회에 대한 장기적 영향에 대한 심각한 고민 없이 출총제 같은 제도를 폐지했다면 새 정책대안을 모색할 필요도 있다.”

정의는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

“진보적 의제일 수밖에 없는 공정성과 정의를 신보수 정부가 어울리지 않게 선창한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다. 하지만 이는 한국사의 진화 단계가 불가역의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상징하는 사태일지도 모른다.”

평등은

▶좌승희 경기개발연구원장

“같은 기회가 같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 것이 시장의 본질이다. 하이에크의 지적처럼 ‘운칠기삼’이 바로 시장 결과의 본질이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너무 기계적으로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면 사회는 획일화하고 하향 평준화는 불가피해진다.”

경제학계가 본격적으로 ‘공정사회’를 논하기 시작했다. 10일 중앙대에서 열린 ‘2011 경제학 공동 학술대회’의 전체 회의 주제도 ‘공정사회와 경제학’이었다. 그간 공정보다는 효율에 관심을 가져온 주류 경제학계에선 이례적인 일이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공정사회, 정치권의 복지 논쟁,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몰고 온 열풍 등이 맞물린 효과다. 이날 모인 경제학자들은 공정사회의 핵심은 경제적 공정성이고, 분배의 문제라는 점에선 인식을 같이했다. 그 뒤 과연 공정성을 잴 잣대가 무엇인지, 효율성과 공정성의 충돌을 어떻게 극복할지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한편에선 과도한 ‘공정 열풍’의 부작용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강했다.

10일 중앙대에서 열린 경제학 공동학술대회 제 1 전체 회의 참석자들. 왼쪽부터 이정우(경북대), 조윤제(서강대), 윤평중(한신대) 교수, 유장희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 이승훈(서울대) 명예교수, 강철규(서울시립대) 교수, 김경수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장. [김상선 기자]



◆“경쟁 통한 소득 분배는 공정”=“부유세는 경제적 정의에서 보면 매우 부당한 세금이다.”

 이날 전체회의 발표자로 나선 이승훈 서울대 명예교수의 지적이다. 이 교수는 공정한 시장 경쟁을 통해 결정되는 소득 분배는 기본적으로 공정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자유시장경제에서 교환과 공동생산을 통해 얻는 몫은 당사자들 모두의 합의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정당한 몫’”이라는 것이다.

 물론 경쟁에서 패배한 경제적 약자를 돌보기 위한 사회복지는 필요하다. 사회통합과 안정이란 ‘공공재’를 생산하기 위한 것이다. 다만 이때 거두는 세금은 정당한 몫을 빼앗는다는 점에서 공정성을 훼손하는 일종의 ‘왜곡’이고, 왜곡의 폭은 작을수록 바람직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부유세는 이런 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그는 “현재 보유한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부과하는 부유세는 과세할 소득을 소비하지 않고 저축한 데 대한 추가적 과세로서 저축을 징벌하는 부작용을 낳는다”고 지적했다.

 전면 무상급식도 비용과 편익을 잘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스스로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가정의 학생에게도 무상으로 급식하려면 세금을 더 걷어야 하는데, 세금을 더 걷으려면 전면 무상급식이 더 유익한 사회통합과 안정을 보장한다는 설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가는 시장보다 공정한가”=현 정부의 ‘공정 드라이브’가 가진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한국제도·경제학회가 ‘우리 사회, 그렇게 불공정한가?’라는 주제로 연 학회별 토론회에서다.

김영봉 중앙대 교수는 “문제는 공정사회라는 이름 아래 서민 우대와 복지 제공 약속이 폭주하는 모양새라는 것”이라며 “이런 공정 개념에는 정치가가 시장보다 더 공정하게 자원과 기회를 배분할 수 있다는 ‘시장 부정-국가 만능’ 사상이 깔려 있다”고 비판했다. ‘공정·친서민정책’이 역으로 공정성을 훼손하는 사례로는 서민 전용 대출상품인 햇살론을 들었다. 그는 “햇살론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출해 주기 때문에 인기가 있다”며 “하지만 이런 금융은 더 많은 서민을 만성 부채자와 신용불량자로 만들고 신용을 지켜온 소비자는 이 비용을 분담하는 역차별을 당하게 돼 결과적으로 불공정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좌승희 경기개발연구원장은 공정사회론이 자칫 경직된 평등론으로 흘러 성장의 동력을 갉아먹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민주사회에서 공정성은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법에 의해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지만 결과는 자신이 책임지는 게 기본 원칙이 돼야 한다”며 “이런 법 앞의 평등만이 발전 친화적인 공정사회를 담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독점적 권력에 대한 견제 필요”=조윤제 서강대 교수는 경제학이 ‘불공정한 현실’에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주류 경제학(신고전파)은 자본주의체제 아래서는 분배가 공정하다고 암묵적으로 제시하지만 실제 경험상에서 그렇게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40년간 규제가 완화되고 경쟁이 자유로워졌지만 부와 소득의 분배는 더욱 불균등해져 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시장의 효율성을 살리는 것만큼이나 독점적 권력에 대한 견제를 통해 공정한 경쟁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한다. 대기업 문제의 경우 출자총액제한 폐지 이후의 정책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효율성과 공정성이 충돌할 때다. 대표적 분야로 재벌·중소기업·부동산·노동·연금 문제를 꼽았다. 이를 풀기 위해선 “개방과 기업 환경 개선, 복지와 사회안전망 확충을 동시에 해 가는 ‘정책 조합’이 중요하다”고 했다. 복지 문제도 “과거 선진국들이 갔던 길을 그대로 뒤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 복지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 시점이지만 국가 간 경쟁이 더욱 심화되면서 선진국들이 ‘복지 감축’으로 되돌아선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조 교수는 “대중민주주의 아래에서 경제 효율성과 장기적 건전성을 발전시키려면 정부가 일반 대중이 원하는 것보다 조금 더 보수적인 정책을 택해 나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조민근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