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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게임 한류 돈 바람 몰고 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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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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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젊은이들이 한국에 열광하고 있다. 한국은 이미 ‘동방의 할리우드’다.”
미국 CNN은 지난해 말 ‘한류가 아시아를 휩쓸고 있다’는 제목의 특집 리포트를 내보냈다. 지난 10년 동안 급성장한 한국산 문화 콘텐트가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태국 등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끌었다. 이런 현상이 ‘한류우드’라는 신조어까지 낳았다는 내용이었다. CNN은 음악, 드라마, 영화와 함께 게임을 한류 열풍의 핵심 근원지로 꼽았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09년 문화 콘텐트 수출액 30억 달러 가운데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

국내 게임업체들이 해외 진출에 적극 나선 배경에 웹젠의 사례가 있다. 3D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인 ‘뮤’로 국내 온라인 게임 1세대를 이끈 웹젠은 게임업계의 신화적 존재였다. 이수영, 김남주라는 스타 CEO를 잇따라 탄생시켰고 코스닥시장에서도 승승장구했다.

웹젠이 자리 잡았던 빌딩 지하주차장에는 직원들이 스톡옵션으로 산 외제차가 넘쳐 날 정도였다. 그러나 2007년 100억원이 넘는 개발 비용과 막대한 홍보비를 쏟아부은 후속작 ‘썬(Soul of the Ultimate Nation)’의 성적은 참담했다. 웹젠의 위상은 끝없이 추락했다. 마침 떠오르던 넥슨, 엔씨소프트와 명암이 교차했다.

사실상 망한 게임이었던 ‘썬’의 탈출구는 엉뚱한 곳에 있었다. 웹젠은 중국의 게임포털 더나인과 1300만 달러 규모의 퍼블리싱(서비스 대행) 계약을 맺어 단번에 투자비를 회수했다. 게임이 상용화되고 나서 3년 동안 매출의 22%를 로열티로 거둬들였다. 국내에서 망한 게임이 해외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매년 수십 개의 온라인 게임이 쏟아져 나오는 국내 시장은 레드오션이 된 지 오래다. 2005년 ‘카트라이더’ ‘스페셜포스’ ‘서든어택’ 같은 가벼운 캐주얼 게임들이 나와 성공했다. 이후 시장을 평정한 ‘대박 게임’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특히 온라인 게임은 게이머 한 사람이 한 종류에만 몰두하는 성향이 강하다. 이 때문에 한정된 고객을 뺏고 뺏기는 마케팅 경쟁이 불가피하다. 해외 진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는 얘기다.

해외에서 수익 절반 거둬들여
국내 게임업체의 해외 활약은 숫자로도 입증된다. 넥슨은 2009년 매출 7000여억원 가운데 60%를 해외에서 벌어들였다. 이 회사 대표작인 ‘메이플스토리’는 60개국에 1억 명의 회원이 있다. 엔씨소프트 역시 해외 매출이 절반을 넘었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이름을 날리는 기업도 있다.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와 액토즈소프트는 중국 서비스 비중이 절대적이다. 와이디온라인은 댄스게임 ‘오디션’으로, 네오위즈게임즈는 ‘크로스파이어’로 1000만 명에 가까운 회원을 확보했다. 네오위즈는 중국 시장에서의 성공 덕분에 분기 매출 기준으로 NHN의 한게임을 제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콘텐트 강국인 일본에서도 국내 업체의 활약은 눈부시다. NHN과 CJ인터넷이 각각 ‘드래곤네스트’와 ‘SD건담’으로 입지를 굳혔다. 지난해 11월 국내 최대 게임쇼인 ‘지스타2010’에서 해외 바이어들이 계약한 국내 온라인 게임은 총 166건으로 2억 달러에 달한다.

“한국산 게임의 인기 비결은 소녀시대나 카라 같은 걸그룹과 비슷하다.” 국내 한 게임업체 CEO는 최근 사석에서 이런 얘기를 털어놓았다. 걸그룹과 게임업체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그는 “1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국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국내 온라인 게임 업체는 기본기를 갖췄다”며 “소녀시대가 완벽한 안무와 가창력을 겸비한 것과 마찬가지로 국내 게임업체도 오랜 노력 끝에 기술력과 스토리 라인에서 우위를 점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게임업체들은 2000년대 초중반부터 게임시장의 변화를 감지해 발 빠르게 움직여왔다. 게임산업이 태동한 이후 게임 시장은 플레이스테이션과 엑스박스로 대표되는 ‘콘솔’ 중심으로 구성됐다. 닌텐도, 소니 같은 일본 업체가 장악한 시장이었다. 이때 한국 업체들은 초고속인터넷 등장에 맞춰 ‘온라인 게임’이라는 틈새시장을 조금씩 장악해갔다. 개발 단계부터 각국에 맞는 현지화를 시도하는가 하면 아예 중국 등에 개발 스튜디오를 두는 등 효율성을 높인 결과다.

한국 게임에 대한 각국의 기대치도 높아졌다. 사전에 판권을 사는 대가로 개발 단계에서 수천만 달러를 받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무엇보다 한국산 게임은 다양하게 변형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만화에서 캐릭터를 빌려오고 인기 드라마의 스토리 라인을 가져와 한류 팬을 끌어들였다. 상당수 업체가 태국, 인도네시아 등 현지에서 인기 있는 한류 스타를 모델로 내세워 캐릭터 상품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 게임업체의 가장 큰 경쟁 상대는 역시 중국과 대만이다. 이들 나라 업체들은 막대한 인력과 자금을 바탕으로 한국산 게임을 겨냥한 경쟁작을 대거 출시했다. 혐(嫌)한류를 내세워 홍보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완성도에서는 아직 한국 업체들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이용자를 확보할수록 게임의 재미가 더해지는 온라인 게임 특성상 힘겨운 경쟁이 예상된다.

한국 업체들은 세계 최대의 콘텐트 시장인 북미에도 적극 진출하고 있다. 넥슨은 2005년 넥슨아메리카를 설립한 이후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드래곤네스트’ 등 국내외에서 검증이 끝난 작품들을 이 지역에 선보였다. 이 회사는 지난해 북미 시장에서만 60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것으로 추산된다.

넥슨 관계자는 “국내나 아시아에서 인기 있는 정액요금제 대신 미국인들이 선호하는 선불카드를 적극 활용한 것이 성공 비결”이라며 “현재 4만 개 이상의 소매점에서 선불카드를 판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선불카드는 일정 금액으로 사서 충전하는 방식이다.

엔씨소프트는 ‘길드워2’와 ‘아이온’으로, NHN은 ‘테라’로 북미 시장을 노크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국내 게임업체는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 측면에서는 ‘벤처’를 벗어난 지 오래”라며 “10년 가까이 쌓아온 노하우 덕분에 북미 시장에서도 큰 수익을 거둘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 박건형 서울신문 기자·사진 중앙포토, NH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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