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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산업지도 대해부 2탄 | 2차전지] 한국 2차전지 일본 아성 뚫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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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면서 필름은 사실상 사라졌다. 한 번 쓰고 버리는 일반 건전지도 곧 사라질지 모른다. 재충전해 쓸 수 있는 2차전지가 시장을 빠르게 대체한다. 2차전지는 일반 스마트폰과 태블릿PC도 모자라 전기자동차에도 들어간다. 시장이 폭발적으로 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전망이다.

10년 추격해 2차전지 日에 육박 … 삼성SDI·LG화학 기술 주도권 장악 #핵심 소재 국산화율 20% 수준 … 대·중기 협업 통해 부품·소재 키우자

2차전지 시장의 경쟁 구도는 한국과 일본의 대결로 좁혀졌다. 일본보다 10년 늦게 시장에 뛰어든 한국은 이제 일본을 위협할 수준까지 추격했다. 차세대 2차전지 주도권을 한국이 잡았다는 것은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고질적인 문제인 부품·소재 경쟁력은 아직 일본과 격차가 크다. 이를 극복해야 진정한 2차전지 강국에 오른다. 이코노미스트는 ‘태양광 산업(1067호)’에 이어 2차전지 산업지도를 심층 분석한다. 국내 주요 2차전지 기업 20선도 소개한다. 또 증시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는 2차전지 종목의 ‘옥석 구분’에 참고할 사항을 짚어봤다.

GS나노텍. 2009년 말 일본에서 열린 2차전지 전시회 현장. 일본 방송매체들이 GS나노텍(GS칼텍스 자회사)의 부스에 몰려들어 호들갑을 떨었다. “일본을 앞서는 기술이 나왔다.” GS나노텍이 개발에 성공한 2차 박막전지를 눈으로 확인한 후 나온 반응이었다. 수십 년간 2차전지 시장을 호령해 온 일본으로선 충격적인 일. 한편에서는 “반도체에 이어 2차전지 시장도 한국에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놨다.

GS나노텍에 남은 일은 이제 양산뿐. 2차 박막전지의 양산에 성공한다면 아시아를 넘어 세계 최초다. 현재 테스트가 한창이다. 이 회사는 초기 시장진입을 위한 응용제품 발굴에도 힘을 쏟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GS나노넥이 2차전지 시장의 ‘본토’인 일본에 판매망을 구축한다는 점이다. GS 관계자는 “일본 시장 진출을 위한 판매 대리점을 개척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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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LG화학의 리튬 2차전지가 탑재된 전기자동차를 보고 있다. 볼리비아는 세계 최대 리튬 보유국이다.

파낙스이텍. 한국의 작은 지방 중소기업이 일을 냈다. 세계 전해액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전해액은 2차전지의 핵심 소재다. 부산에 있는 이 회사는 세계 전해액 시장의 50%를 쥐고 있는 일본 우베·미쓰비시·토미야마를 따돌리고 업계 1위에 올라선 것으로 전해진다. 공식 통계는 아니지만 시장 분위기가 그렇다.

파낙스이텍 관계자는 “2010년 전해액 세계시장 판도를 분석 중인 시장조사기관 안팎에서 우리가 일본 기업을 제쳤다는 전망이 나온다”며 “전해액 시장 관계자들은 이미 우리를 1위로 인정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 회사의 2008년 시장점유율은 21%로, 일본 우베에 이어 2위였다. 파낙스이텍 관계자는 “전해액 생산기술력은 일본에 뒤질 게 없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SK이노베이션(옛 SK에너지). 2009년 5월 SK에너지는 일본 도넨을 상대로 한 특허침해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2004년 SK에너지는 세계 셋째로 리튬이온전지용 분리막을 개발했다. 분리막은 2차전지의 핵심 소재 중 하나다. 그러자 도넨이 2006년 특허 소송을 제기했다. 시장 진입을 방해할 목적이 분명했다. 당시 이 시장은 일본 아사히화성과 도넨이 장악했다. 소송은 4년을 끌었고 결국 SK에너지가 이겼다. 이후 SK에너지는 막대한 투자를 통해 최근 리튬이온전지 분리막 4·5호 생산라인 가동을 시작했다. 세계 생산능력의 40%를 담당할 수 있는 규모다.

2차전지의 ‘극일(克日)’ 팡파르가 울리기 직전이다. 10년 전 2차전지 시장 95%를 장악했던 일본은 한국의 맹추격에 고전을 면치 못한다. 반도체와 TV, LCD(액정표시장치) 시장을 한국에 넘긴 일본은 2차전지를 마지막 보루로 여겼다.

한국, 일본 맹추격
하지만 지난해 말 일본 언론은 비보를 전했다. 2차전지의 핵심인 리튬이온전지 시장에서 삼성SDI가 산요를 제치고 처음으로 1위에 오른 것이다. LG화학은 소니를 누르고 3위에 올랐다. 국가별 점유율에서는 일본이 42%로 35%인 한국을 앞서지만 아성이 무너진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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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컨소시엄이 지분을 투자한 리튬 프로젝트가 펼쳐지는 칠레 북부, 아타카마 사막의 염호.

삼성SDI와 LG화학은 10여 년 전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삼성SDI는 10년간 1조3000억원을 투자해 기술을 키웠다. 일본 소니가 리튬이온을 개발한 게 1991년이다. 쉽게 말해 10년을 따라잡은 것이다. 요인은 일본이 특허와 기술을 장악했던 니켈계 2차전지를 포기하고 과감하게 리튬계 2차전지 분야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선발자의 경로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기술 비약을 통해 추격한 것이다. ‘추격 경제학’에서는 이를 단계생략형 추격이라고 한다.

2차전지 산업은 가장 유망한 미래산업 중 하나다. 2차전지는 한 번 쓰고 버리는 1차전지와 달리 충전해 재사용할 수 있는 전지를 말한다. 관련 업계에서는 니켈·니켈-카드뮴·니켈-수소전지는 2차전지로, 리튬 물질을 활용한 리튬이온·리튬폴리머·리튬이온폴리머·리튬-인산철 전지는 차세대 2차전지로 부른다. 언론에서 말하는 2차전지는 대부분 리튬계 전지로 보면 된다.

리튬 2차전지의 모양은 각각이다. 일반 건전지 모양으로 디지털카메라나 노트북 등에 들어가는 원형뿐 아니라 박막형, 각형 등 여러 종류다. 또한 향후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질 것으로 보이는 전기자동차에 들어가는 상자 모양의 중대형 리튬 2차전지 등이 있다. 수요는 많고 넓다.

부품·소재 기술력 일본의 절반 수준
2차전지가 주목 받는 것은 확실한 미래시장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각종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리튬이온전지 시장은 5년 뒤 현재 4배인 50조원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참고로 현재 메모리반도체 시장 전체 규모가 50조원 정도다. 모바일 기기와 전기자동차의 확산이 촉매다. 시장조사 회사 가트너에 따르면 모바일 컴퓨터 기기는 2009년 3억5000만 개에서 2015년 15억 개로 늘 전망이다. 한국투자증권은 2020년 전기차 시장이 530만 대 규모로 크고 관련 전지 시장은 280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영준 차세대전지연구센터장은 “세계 2차전지 시장이 소형에서 중대형으로 급속히 재편되면서 향후 10년간 소형 시장은 2배 증가하고 중대형은 20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시장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쥔 것이다.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했으니 이제 샴페인을 터뜨릴 일만 남은 것일까? 그렇지 않아서 문제다. 한국 산업의 고질병, 바로 부품·소재 경쟁력이 자칫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셀이라고 불리는 2차전지 완제품의 핵심 소재는 크게 네 가지다. 양극활물질, 음극활물질, 분리막, 전해액이다(용어설명 참조). 4대 핵심소재 없이는 2차전지를 만들 수 없다. 비중도 만만치 않다. 2차전지 하나를 만드는 데 100원이 든다면 원료 값 비중은 양극활물질이 35원, 분리막 20원, 전해질 15원, 음극재 10원이다. 핵심소재만 75%를 차지한다. 2차전지 시장이 성장하면 당연히 소재 시장도 큰다. 업계에 따르면 양극활물질 시장 규모는 지난해 9000억원에서 2015년 2조600억원으로 커질 전망이다. 같은 기간 음극활물질은 1조1000억원, 분리막은 1조1000억원, 전해액은 1조6000억원 규모를 이룰 것으로 추정된다.

소재 분야에서 한국은 일본에 약세다. 리튬이온전지의 경우 핵심소재·부품은 국산화율은 20% 미만이다. 대부분 일본에 의존한다. 지난해 산업연구원이 낸 ‘우리나라 리튬 2차전지 산업의 발전전략 평가와 향후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리튬 2차전지 시장에서 우리나라는 지난해 2분기에 이미 일본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점유율은 한국이 40%, 일본이 37%다. 5년 전에는 일본이 48%, 우리나라는 18%였다. 하지만 4대 핵심소재별 국산화율은 양극활물질 70%, 음극활물질 1%, 분리막 25%, 전해액 86%다. 핵심소재 및 원천기술 수준도 일본과 비교할 때 부품·소재 분야는 절반, 원천기술 부문은 3분의 1 수준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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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10년 전만 해도 2차전지 완제품 경우 선진국 일본의 특허 장벽으로 시장 진입이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삼성SDI, LG화학은 특허와 기술 장벽 모두 하나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특히 IT(정보기술) 기기가 중심이 된 중소형용뿐만 아니라 전기자동차용 등의 차세대 시장에서도 우리 기업이 선점해 가면서 좋은 징조를 보인다. SK에너지, GS칼텍스 등 대기업과 몇몇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중소기업이 가세하고 있는 것도 우리나라의 2차전지 경쟁력을 높여 주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부품소재는 갈 길이 멀다. 국내에서 양극활물질을 생산하는 기업은 엘앤에프, 에코프로, 코스모화학이 있다. 유미코아코리아가 세계시장에서 둘째로 많이 양극활물질을 공급하지만 이 회사는 벨기에 본사를 둔 기업이다. 반면 일본 기업으로는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의 니치아를 비롯해 일본화학공업, 아사히화성, 세이도화학, 토다공업, 스미토모, 다나카 케미컬, 미쓰비시 케미컬 등 20여 업체가 참여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양극활물질 사업에 뛰어든 곳이 많지만 기술력과 신뢰 문제로 제대로 시장을 열지 못하고 있다.

핵심소재 대부분 일본이 선두
음극활물질은 그야말로 심각한 수준이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음극활물질 국산화율이 1%라고 발표했지만 업계에서는 사실상 0%로 본다. 2005년께부터 소디프신소재(현 OCI머티리얼즈)가 음극재료를 개발했지만 특허 문제로 사업을 중단한 바 있다. 음극활물질 시장은 일본이 77%, 중국이 23%를 차지한다. 음극활물질의 주재료는 인조흑연과 천연흑연이다. 일본은 인조흑연을 활용한 기술력이 뛰어나고 중국은 풍부한 자원을 무기로 시장을 넓혀가는 중이다. 업체별로는 일본 히타치화성이 35%로 1위, 일본 카본이 18%로 2위다. 중국의 BTR이 3위(10%)다. 국내에서는 GS칼텍스와 OCI머티리얼즈, 포스코켐텍, 삼화콘덴서, 일진전기 등이 시장 진입을 노리고 있다.

전해액 부문은 우리나라가 일본에 가장 근접한 기술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국내 기업으로는 파낙스이텍과 테크노세미켐, 후성이 돋보인다. 파낙스이텍은 2008년 기준으로 일본 우베에 이어 세계시장 점유율 2위다. 테크노세미켐은 4위다. 대부분 삼성SDI와 LG화학에 공급하는 두 업체는 전해액의 핵심 재료는 주로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전해액을 만들기 위해선 전해질이 필요한데, 전해질의 주재료인 리튬염이나 첨가물질, 유기용매는 모두 일본 기업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후성이 전해액의 핵심 원료인 리튬염 개발에 성공해 국내 2차전지 회사에 공급하고 있다.

2차전지의 양극과 음극이 만나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하는 분리막 시장 역시 일본이 강세다. 이 시장은 일본의 히타치화성, 도넨, 우베 그리고 미국 셀가드가 전체 시장의 90% 가까이 차지한다. 국내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세계시장의 8~9%를 차지한다. 분리막은 2차전지가 폭발하지 않도록 하는 안전성에 가장 크게 관여하는 재료다. 그래서 높은 신뢰도가 요구된다.

분리막은 중소형 IT용 분리막과 전기자동차용 분리막으로 구분되는데 SK이노베이션이 주로 중소형 IT기기용을 생산했다. 차세대 전기자동차용 분리막은 아직 국내에서는 상용화되지 않았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이 향후 전기자동차용 분리막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고 삼성SDI와 LG화학이라는 안정적인 공급처를 두고 있어 시장점유율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SK에너지 외에 국내에서는 씨에스텍이라는 중소기업이 자체 기술로 분리막을 개발했다.

지금 같은 상황이면 2차전지를 수출할수록 대일 소재·부품 적자는 확대될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7월 2020년까지 15조원을 투자해 한국을 2차전지 생산 세계 1위로 키운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환영할 일이지만 특별한 전략이 필요할 듯하다. 무엇보다 2차전지 국내 기업 간 협업과 국가적인 마스터플랜 수립이 필요하다. 일본 내 2차전지 1·2위인 산요전기와 소니는 그동안 소재·부품 중소기업과 적극적인 구매협약을 맺으면서 산업을 키웠다. 국내에서는 2차전지 시장 투 톱인 삼성SDI와 LG화학이 일부 업체와 협업을 진행하지만 성과는 미미하다는 게 중론이다. 이런 식이면 지긋지긋한 대일 무역적자에 우리의 미래산업인 2차전지가 또 기여하게 되는 셈이다. 팡파르를 엉뚱한 곳이 울릴 수 있다.

※ 솔라앤에너지는 디스플레이산업 리서치 및 컨설팅 회사인 디스플레이뱅크에서 분사했다. 신재생에너지와 2차전지 산업 분석과 컨설팅을 전문적으로 제공한다.

홍유식 솔라앤에너지 상무, 김태윤·이윤찬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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