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PC 토론을 보면서

중앙일보

입력

인터넷 PC에 대한 토론이 조인스 Online Poll 란에서 진행되고 있다. 여러 가지 다양한 의견들이 올라와 있지만, 그 토론을 보는 필자의 마음은 별로 편하지 못하다. 왜냐면, 우리나라에서 컴퓨터가 올바른 위치에서 대접받기에는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에서이다.

토론의 내용을 보면 인터넷 PC를 공격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대게 비슷하다.
"확장이 안된다." "A/S나 되는지 꺼림직 하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이다." "가격이 비싸다." 그렇지만, 이들 주장의 많은 부분은 사실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 실제 인터넷 PC의 카달로그를 뜯어보고, 이 컴퓨터에 대해서 제대로 소개된 자료를 열어본 사람이라면 이러한 말을 마음대로 쏟아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인터넷 PC는 특별하게 논란이 될 대상이 아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인터넷 PC 도 역시 PC 다. 가격이 더 싸고, 누구나 부담 없이 살 수 있도록 보다 긴 할부 혜택 등이 제공될 뿐, 대기업에서 이미 나오던 완성품 컴퓨터와 동일하게 취급하면 된다. 그리고 이 PC의 원래 타겟은 파워 유저가 아닌 일반적인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확장성이나 가격, A/S 주장도 알고보면 근거가 크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억측들이 마치 당연한 사실인양 흘러 다니는 것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서 비롯하지 않나 싶다. 즉, 우리의 잘못된 PC 문화가 그 주범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우리나라에서 PC는 자동차와 닮은 점이 많다. 둘 다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기 위한 ''도구''로써 개발이 되었지만, 우리는 그 자체를 도구나 목적의 의미로 보기 보다는 외양이나 위세를 나타내는 도구를 생각하는 것 같다.

활용 여하를 떠나서 그랜저를 타는 사람이 티코를 타는 사람에게 우쭐대는 것 처럼, 펜티엄 III 가 탑재된 PC 를 가진 사람이 486급 PC를 가진 사람에게 보다 더 있고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PC 통신의 한 게시판에서는 자신의 컴퓨터 사양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격렬한 논쟁이 오가기도 했다.

단순히 컴퓨터로 워드 작업을 조금 하고 PC 통신을 조금 하는 사람일 지라도 하고 있는 일이 정말 불편해서 컴퓨터를 교체하기 보다는 그저 새 제품이 나왔다기에 그러는 경우도 많다. 컴퓨터를 제때 교체하지 못하거나, 최신 부품을 꼭 써보지 않으면 컴맹이 아니냐는 비난을 받기도 일쑤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컴퓨터를 구입한다고 하면, 아이들의 컴퓨터 활용 능력 보다는 현존하는 최고 사양의 컴퓨터를 무조건 구입하려고 한다. 물론, 구입 이유는 "오래 쓰려면 좋은걸 사야 한다." "어떤걸 할지 모르니 모든걸 할 수 있는 것을 사야 하지 않느냐?" 하며 구구절절하다. 그렇지만, 그 이면에는 친구들 사이에서 혹시나 따돌림이라도 당하지 않게 남 보다, 무조건 좋은걸 사야 한다는 의도가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국내의 컴퓨터 사양이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최첨단을 달리다보니. 세계적인 컴퓨터 부품 메이커들이 한국 시장에 자사의 최신 제품을 제일 먼저 내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가격이 어떻든 일류 부품이라면 무조건 사들이고, 조금 시간이 지난 제품은 거들떠도 보지 않다보니, 전세계에서 제일 비싸게 부품이 팔리는 곳도 한국이고, 매년 컴퓨터 관련 제품의 수입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천만대 이상의 컴퓨터가 판매되었고, 매년 컴퓨터가 수백만대가 우리나라에서 새로 팔려가지만, 중고 컴퓨터 시장은 유례없이 침체되어 있다. 중고 컴퓨터를 쓰면 헌 옷을 기워입는양 뭔가 모자란 사람이 아닌가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니 중고 컴퓨터가 사용되어도 좋은 자리들이 모두 새 컴퓨터에 의해서 채워진다. 국가적인 낭비이다.

사회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이러한 것에 익숙해져 있는 일부 사람들이 보기에는 "인터넷 PC"는 그야말로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저사양 PC 이며, 최첨단 부품은 찾아보기 힘드니 삼류 정도 밖에 안되는 PC로 보일 수 밖에 없다.

물론, 우리가 컴퓨터라는 물건을 받아 들인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 동안은 일부 매니아들의 전유물이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이제 이들이 만들었던 컴퓨터에 대한 잘못된 환상은 깨어져야 한다. 특히 컴퓨터가 위세와 동일시되는 풍토는 없어져야 한다. 컴퓨터는 도구일 뿐이다.

이번 인터넷 PC 보급을 계기로 합리적인 컴퓨터 문화가 확산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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