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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동설한 홍매화향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03호 11면

온실 구석에 있던 매화가 한 가닥 봄을 터뜨렸습니다. 세상을 꽁꽁 얼어붙게 한 추위를 뚫고 홍매화가 기어이 꽃을 피웠습니다.
몽실몽실 꽃망울 맺은 건 진즉부터였고, 이제나저제나 꽃망울 터지길 기다린 지도 오래였습니다.
기쁜 마음에 다가갔습니다. 입은 꼭 다물고 ‘흥흥’ 콧김을 불어 막힌 코를 뚫고, ‘킁킁’ 콧김을 당겨 비워진 콧구멍으로 매화향기를 듬뿍 빨았습니다.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매화향이 순식간에 온몸에 가득 찹니다. 얼굴은 발그레해지고, 심장의 뜀박질이 빨라집니다. 비록 두 송이가 뿜어대는 여린 매화향일지라도 이 엄동설한에 뜻밖의 횡재입니다.
지난봄, 매화 밭에 가득했던 매화향기가 온전히 되살아났고, 한 송이 백매를 띄워 마시던 찻자리도 되살아났습니다.
이 맛을 누가 알겠습니까. 그저 오늘 아침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빛도, 추위도, 매화도 고맙습니다. 뚫린 콧구멍도 고맙습니다.

PHOTO ESSAY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깊은물’ ‘월간중앙’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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