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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163> 세종로 이순신 장군 동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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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이 없는 세종로 네거리를 상상할 수 있을까. 세종로는 과거(경복궁·덕수궁·육조)나 현재(청와대·정부종합청사)가 만나는 명실상부한 한국의 중심 도로다. 이순신 장군상은 40여 년간 한국의 심장부인 세종로를 지켜 왔다. 하지만 세종로에 우뚝 서 영원히 천하를 호령할 것 같았던 장군상도 세월을 비껴 갈 순 없었다. 지난해엔 40일간의 대대적인 수술을 받은 뒤에야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순신 장군상이 세종로에 설립된 배경과 제작 과정, 또 이순신 장군상을 둘러싼 갖가지 논란을 알아본다.

장정훈 기자

박정희 대통령 “일본이 무서워할 충무공 동상 세우라”

세종로를 호령하고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지난해 11월 14일부터 40일간 보수작업을 했다. [서울시 제공]

세종로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설립된 것은 지금부터 43년 전인 1968년 4월 27일이다. 오전 10시에 열린 제막식에는 박정희 대통령과 유진오 신민당 당수 등 여야 정치인과 시민들이 참석했다. 제막식은 해군군악대의 주악으로 시작해 김종필 건립위원장의 경과보고, 박 대통령의 헌화, 경기여고 합창단의 찬가로 진행됐다. 특히 66년 가을 정계에 입문한 유진오 박사와 박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처음 만난 자리이기도 하다(중앙일보 1968년 4월 27일자). 이순신 장군상의 설립은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가 주도했다. 이 단체는 당시 각 시대와 부문을 대표하는 선각자들 중 동상을 세울 인물을 선정했다. 경제 건설(근대화)과 승공(민족) 통일을 고취하기 위해서였다. 장충동 유관순 동상이나 파고다 공원의 3·1 운동 부조, 김구 동상이 이때 설립됐다. 청와대와 정부청사, 광화문 등 국가의 심장부로 통하는 세종로 사거리를 지킬 인물은 특별해야 했다.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일제 때에 변형된 조선왕조의 도로 중심축을 복원하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든다. 그 대신 세종로 네거리에 일본이 가장 무서워할 충무공의 동상을 세우라.” 이순신 장군상은 이렇게 해서 세종로 네거리에 세워지게 됐다.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는 이순신 장군상의 제작을 당시 서울대 미대 김세중 교수(1986년 작고)에게 의뢰했다. 제작비 960만원은 국고에서 충당했다.

구리 부족해 놋그릇·놋숟가락 녹여 만들어

이순신 장군상은 2년여에 걸쳐 제작됐다. 제막 당시 이순신 장군상은 지상에서 장군의 투구까지 16.5m, 동상만 6.3m, 무게는 8t에 달하는 동양 최대의 동상이었다. 하지만 제작 과정은 평탄치 못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보수를 하면서 68년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을 찾아냈다. 제작은 김 교수의 자택 마당에 만든 가설 작업장에서 진행됐다. 김 교수의 제자로 동상 제작에 참여했던 백현옥(70세)씨는 “김 선생은 한번 작업을 시작하면 4~5시간 쉬지 않고 점토와 석고 작업에 열중하는 등 심혈을 기울였다”고 회고했다. 흙으로 본을 뜰 때만 해도 동상 높이는 5m였다고 한다. 하지만 세종로 폭이 100m인 만큼 동상 규모를 크게 하라는 고위층의 지시로 1.5m가 높아졌다고 한다. 동상은 성수동의 대광공업사에서 주조됐다. 하지만 경제상황이 나빠 구리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했다. 처음엔 국방부에서 얻어 온 탄피를 녹여 사용했지만 주물에 제대로 주입되지 않아 모두 버렸다. 그 뒤 해체된 선박에서 나온 엔진, 놋그릇, 놋숟가락 같은 일반 고철을 사용했다. 이마저 양이 모자라 재료가 조달될 때마다 나누어 여섯 조각으로 주조했다. 이 때문에 이순신 장군상은 재질과 두께가 고르지 않다. 또 청동 고유의 색이 나오지 않아 짙은 청록색 페인트와 구리 가루를 섞어 표면을 칠했다. 동상 몸체를 결합할 때는 동상 재료와 같은 용접봉을 만들지 못해 부산 미군부대에서 공수한 구리 용접봉을 사용했다. 이 때문에 이순신 장군상은 외부에선 멀쩡해 보였지만 내부에선 균열이 일어났다.

조각가 김세중교수 “수호자로서 위엄보이게 제작”

이순신 장군상은 삼각산과 경복궁을 배경으로 세종로 중앙에 세워져 있다. 오른손으로 칼을 잡고 왼손을 허리춤에 꽂은 채 국가의 중심으로 통하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 자세다. 동상의 자세는 중요한 표현 언어다. 김 교수는 생전에 “이순신 장군상의 자세는 그분이 보여주신 호국정신을 표현하면서, 무사적 모습보다는 수호자로서의 자세를 택했다”고 말했다(김세중 기념사업회). 국가 중심로에 세워질 위치와 호국 성웅으로서의 인물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란 설명이다. 당당하게 기립한 자세는 호국의 신념을, 오른손에 든 칼은 실천적 힘을 상징하는 셈이다. 또 이순신 장군상은 동상 이외에 거북선과 화강암 재료에 승리의 해전도가 부조된 좌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좌대가 놓인 것은 매우 넓은 공간에 놓인 동상을 멀리서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동상과 가까운 보도나 차량 안에선 좌대의 아랫부분에 놓인 거북선과 좌대 양 옆의 해전도를 볼 수 있다.

철봉을 스테인리스로 바꿔 … 초속 30m 태풍도 견뎌

이순신 장군상은 지난해 11월 14일부터 40일간 자리를 비웠다. 서울시가 동상을 내시경으로 검사한 결과 내부 표면에 균열이 생기고 내부를 가로로 받쳐주는 철봉이 부식돼 있는 사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상은 미리 제작한 철제로 만든 보호틀에 쌓인 채 트레일러에 실려 경기도 이천에 있는 주물제작소로 옮겨졌다. 이순신 장군상이 떠난 자리는 탈의실 모양의 임시 가림막이 설치됐다. 이천에선 거무튀튀했던 동상의 색깔을 밝은 황동색으로 다듬었다. 68년 제작 당시 구리와 주석 등이 부족해 주물의 합금 비율이 일정치 않아 부위별로 얼룩덜룩했던 외관을 새롭게 단장했다. 동상의 내·외부에서 발견된 결함 부위 22곳도 새로운 주물로 접합했다. 또 녹슬고 약했던 철봉을 스테인리스 재질로 교체해 초속 30m의 태풍에도 끄떡없이 견딜 수 있도록 보강했다. 보수공사를 맡았던 박상규 공간미술 대표는 “40일 동안 이순신 장군 동상은 성형을 포함한 외과수술과 내과수술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40여 년간 풍파에 시달리며 입은 상처를 꿰매고 뼈대를 강화한 뒤 피부 박피 수술까지 받은 셈이다. 모두 2억원이 들었다.

“일본식 칼에 중국식 갑옷” 논란 … 서울시 “문제 없다 … 교체 안해”
이순신 장군상에 대한 논란도 많다. 오른손으로 칼을 쥔 동상의 자세를 문제삼는 사람들이 있다. 일부 시민단체나 조각계 일부에선 중국식 갑옷을 입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해 이순신 장군상을 보수할 때 서울시의회 문상모 의원(민주당)이 다시 공론화했다. 문 의원은 “이순신 장군상은 직선형의 일본식 칼을 들고 중국식 갑옷을 걸친 ‘짝퉁’”이라며 “철저한 고증을 거쳐 새 동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순신 장군이 쥐고 있는 칼이 조선시대 장군용이 아닌 일본도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장군이 입고 있는 옷 역시 중국 갑옷과 유사하고 갑옷 자락이 발목까지 내려가 있는 것도 전투를 지휘하는 장군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국장인 혜문 스님은 “이순신 장군이 오른손으로 칼이 든 칼집을 쥐고 있는데 왼손잡이가 아닌 이상 오른손에 칼집을 쥔 것은 부자연스럽다”며 “동상의 얼굴 표정도 이순신 장군의 영정과 닮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수많은 고증자료를 배경으로 제작됐으며 다시 제작할 계획도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전영석 서울시 균형발전추진과장은 “이순신 장군상은 43년 역사를 가진 예술작품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며 “재건립할 이유가 없다”고 일축했다. 또 동상의 얼굴이 영정과 비슷하지 않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순신 장군에 대한 국가 표준 영정은 동상이 제작된 후 5년이 지나서 지정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른손으로 칼집을 쥐고 있는 자세 역시 문제될 게 없다는 게 김세중기념사업회의 입장이다. 사업회 측은 “오른손은 인물의 의지를 대변한다”며 “조국 수호에 대한 충심과 강렬한 애국심을 표현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칼은 현충사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의전용 칼을 모델로 만들었다”며 “갑옷은 김은호 화백이 그린 영정(1952년)을 참조하고 복식 전문가 석주선씨의 고증을 얻어 제작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사업회는 현재 김 교수의 큰아들인 김범씨가 운영하고 있다. 미술계 일각에서도 “동상은 사료 복원이 아닌 예술 조각인 만큼 그 인물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약간 변형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는 얘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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