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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162> 미국 헌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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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지난 6일 미국 하원에서는 미 헌법이 낭랑하게 울려퍼졌습니다. 1789년부터 시작된 미 하원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의원들에게 헌법을 존중하게 하고 헌법에 근거해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되새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미 헌법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과도한 정부 개입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시카고대 로스쿨 헌법학 교수 출신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 헌법이 ‘미국 정신의 정수(精髓)’라며 헌법에 기반한 통치를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정재홍 기자

“헌법을 지지하고 수호하겠다는 뜻”

1787년 9월 17일 미국 필라델피아의 인디펜던스 홀에 모인 9개 주 대표들이 미 헌법에 서명하는 장면을 그린 하워드 크리스티의 유화. 미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연단 위에 서 있고, 헌법을 기초한 4대 대통령 제임스 메디슨은 왼손에 서류를 든 채 연단 앞에 앉아 있다.

존 베이너 신임 하원의장과 민주ㆍ공화당 하원의원 135명은 초당적으로 지난 6일 본회의장에서 총 4000여 개 단어로 구성된 미 헌법 전문(全文)을 84분간 읽었다. 헌법 낭독은 지난해 11월 2일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승리로 새로 하원의장에 부임한 베이너의 작품이다. 그는 “우리는 늘 지역 주민을 대표한다고 다짐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는 헌법에 대고 맹세하는 것”이라며 “헌법 낭독은 헌법을 지지하고 수호하겠다는 뜻,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새 하원에서는 또 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할 때 “헌법의 어느 조항을 근거로 입법을 추진한다”는 취지의 문구를 반드시 넣어야 한다.

 공화당이 헌법을 강조하는 건 미 헌법이 공화당의 원칙과 부합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미 헌법이 작은 정부와 개인의 자유, 기업 활동의 자유, 독재 반대, 가족·이웃·지역사회 보호라는 당의 5가지 원칙을 지지하고 있다고 본다. 공화당의 여론조사 기관인 ‘퍼플릭 오피니언 스트래티지스’에 따르면 공화당원 5명 중 4명이 “미국의 통치체제가 헌법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과 진보진영에서는 “공화당이 헌법을 독과점한 채 자의적으로 해석하려 한다”며 공화당의 헌법 강조에 부정적인 눈길을 보내고 있다. 헌법이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데도 공화당의 입맛에 맞춰 헌법을 재단하려 한다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WP)는 “하원에서 헌법 전문을 낭독하고 헌법 조항을 근거로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규정은 한마디로 공화당의 정치적 술책”이라며 “이런 규정들은 의원들의 입법 활동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영국과 전쟁에서 승리한 13개주 대표들이 만들어

지난 5일 미 의회에서 취임 선서를 하는 하원의원들. [중앙포토]

정치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헌법이 최고 권위의 법으로 미국을 만들고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하게 한 기초라는 데 동의한다. 미 헌법은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13개 주의 대표들이 모여 만들었다. 당초 주 사이의 자유로운 통상을 보장하기 위한 연방조항 수정안을 만들려다가 국가 설립에 필요한 헌법을 제정하자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4대 대통령 제임스 메디슨이 큰 역할을 했다. 1787년 9월 17일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9개 주의 대표가 서명함으로써 발효됐다. 이 헌법에 따라 독립전쟁의 영웅 조지 워싱턴이 선거인단의 만장일치로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 미 연방정부가 정식 발족하게 됐다.

 이때 제정된 헌법은 오늘날까지 수정 없이 보존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헌법으로 남아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현재까지 27개의 수정조문이 추가됐다. 추가 조문은 수정헌법이라고도 한다.

최초 헌법에 3권 분립, 개인의 총기 소유권 명시

최초의 헌법은 전문(前文)과 7개 조문으로 구성돼 있다. 전문은 헌법 제정의 목적을 기술했다. 완전한 미 연방 형성과 정의 구현, 국내 평화 확보, 공동 방위체 구축, 국민복지 증진, 자유 보장을 규정했다. 7개 조문은 입법·사법·행정부의 3권 분립을 확립하고, 각 권력기관의 권한과 한계 등을 제시하며, 연방과 주의 관계 등을 설정했다.

 이후 제정된 수정헌법 중 1789년 제안돼 1791년 비준된 첫 10개의 조문은 개인의 권리와 자유 등을 보장한다 해서 ‘권리장전(Bill of Rights)’이라 부른다. 영국의 ‘권리장전’의 영향을 받아 제정됐기 때문이다. 양국의 권리장전은 배심제를 의무화하고 개인의 총기 소유를 인정하며 과도한 처벌을 금지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최초의 헌법은 주 사이에 이견이 컸던 노예제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정리하지 못했다. 잠정적으로 20년간 노예제를 인정하고 노예의 수입을 허용했다. 또 자유를 찾아 도망간 노예에 대해 도움을 주지 못하도록 하는 등 반인권적 조항을 뒀다. 노예제 문제는 결국 남북전쟁(1861~1865년)이라는 피의 대가를 치르고서야 정리됐다. 남북전쟁이 마무리된 해에 제정된 수정헌법 13조가 노예제 폐지를 규정했다.

 흑인 투표권은 수정헌법 15조가 제정된 1870년 이후 인정됐다. 여성의 선거권은 1920년 수정헌법 20조에 따라 도입됐다. 1919년에는 주류의 제조·판매·운송을 금지한 수정헌법 18조가 제정됐다가 1933년 비준된 수정헌법 21조에 따라 금주법이 폐지되기도 했다. 또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4선 이후 대통령 임기를 제한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요구에 따라 3선을 금지하는 수정헌법 22조가 1951년 제정되기도 했다.

 미 헌법은 프랑스 계몽시대의 정치학자 샤를 몽테스키외의 영향을 받았다. 몽테스키외는 견제와 균형을 통해 과도한 권력 집중을 막을 수 있는 3권 분립 이론을 확립했다. 또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도 미 헌법 제정에 영향을 미쳤다. 로크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며 독립된 자연권을 갖고 있는데 이를 확고하게 하기 위해 계약을 통해 국가를 만들었다는 사회계약론을 주창했다.

대통령의 전쟁 권한, 대법관 종신제 등 비판도

미 헌법에 대해서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래리 사바토 버지니아대 교수는 미 헌법이 대통령에게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계속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고 지적한다. 또 헌법이 대법관 임기를 종신으로 만들어 나이든 법관이 시대의 조류를 좇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인구 수에 관계없이 주마다 두 명의 상원의원을 선출하는 헌법 규정은 인구가 적은 주 26개 주가 뭉칠 경우 미국 인구의 17%만으로 정치를 좌우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꼬집는다.

 스탠퍼드 레빈슨 텍사스대 교수는 와이오밍주가 인구가 70배나 많은 캘리포니아주와 같은 수의 상원의원을 연방에 보냄에 따라 국가의 자원이 인구가 적은 주에 상대적으로 더 많이 배분된다고 지적한다. 대통령 선거인단 구성에 대해서도 헌법에 명확한 지침이 없어 주들이 민주·공화당의 대통령 예비선거를 더 빨리 실시하려는 경쟁을 불러오고 있다고 설명한다.

27개 수정 조문 추가된 미국 헌법 주요 내용

당초 미국 헌법은 전문(前文·Preamble)과 7개 조의 본문으로 구성돼 있었다. 여기에 27개의 수정 조문이 추가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미 헌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문 “우리 연합주 인민은, 보다 완전한 연방을 건설하기 위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국내 안녕을 보장하기 위해, 공동 방위를 제공하기 위해, 보편적 복지를 증진하기 위해, 우리 자신과 우리 후손들에게 자유의 축복을 확보하여 주기 위해 미 합중국의 헌법을 제정하고 확립한다.”

제1조(입법부) 연방 의회를 상·하원 양원제로 구성하고, 연방 의회가 주 의회에 대해 우월권을 가지며, 연방 상·하원의 권한과 한계를 규정했다.

제2조(행정부) 대통령제를 도입하고 대통령의 선거절차·자격요건·권한·의무를 명시했다.

제3조(사법부) 연방 대법원과 하급 법원 판사의 신분을 보장하고 배심제를 도입했다.

제4조(주의 권한) 연방정부에 국토 방위 역할을 부여하고, 각 주는 다른 주의 법령·기록·절차를 존중하도록 했다.

제5조(헌법 수정) 상·하원 3분의 2의 동의로 헌법 수정을 발의한 뒤 전체 주 중 4분의 3의 주 의회에서 비준될 경우 수정 헌법의 효력이 발생하도록 했다.

제6조(헌법 지위) 헌법을 국가 최고의 법으로 인정하고 주 법관들은 헌법의 구속을 받도록 했다.

제7조(헌법 비준) 13개 주 중 9개 주가 비준하면 헌법이 효력을 발휘하도록 했다.

수정헌법 제1~10조 종교·언론·출판·집회의 자유와 무기 휴대의 권리를 인정하고, 수색·체포는 영장이 있어야만 가능하도록 했다. 또 대배심의 고발·기소 없이는 중범죄의 심리를 받지 않고, 피고인이 공정한 배심과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했다. 이밖에 과다한 보석금·벌금·형벌을 금지하고, 연방에 위임되지 않은 권한은 주나 국민이 갖도록 했다.

수정헌법 제11~27조 대통령 선거인단 구성 절차를 구체화하고, 노예제 폐지를 명문화했다. 미 국민의 특권과 면책권을 박탈하는 법률을 제정하지 못하도록 하고, 흑인의 투표권을 인정했다. 연방 의회가 소득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고, 상원의원의 직접 선거를 명시했다. 또 술 제조·판매를 금지한 수정헌법을 정했다가, 나중에 폐지했다. 여성의 선거권을 인정하고, 대통령 임기를 임기 만료했을 때의 1월 2일 정오까지로 정했으며, 연방 의회가 매년 최소 1회 모이도록 했다. 대통령의 3선을 금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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