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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휠체어 출두까지 간섭하는 검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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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정선언
사회부문 기자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의 모친인 이선애(83) 태광산업 상무가 검찰에 출석한 12일. 이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서울 서부지검 명의로 된 e-메일 한 통이 전달됐다. 메일에는 신문기사를 스캔한 파일이 첨부돼 있었다. 2006년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2007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각각 비자금 조성·폭행 등의 혐의로 검·경 수사를 받을 때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나타난 것을 꼬집은 기사였다. 평소 피의 사실 공표를 이유로 수사 관련 보도자료조차 잘 내지 않는 검찰의 관례를 볼 때 이례적이었다. 그런 검찰이 수사와는 관계없는 자료까지 보낸 이유는 뭘까.

 이날 오전 이 상무는 구급차를 타고 서부지검에 도착한 뒤 환자이송용 침대에 누운 채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담요와 두꺼운 패딩 점퍼, 마스크 등으로 온몸과 얼굴을 꽁꽁 싸매 누구인지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기자들은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사람이 조사를 어떻게 받느냐”고 검찰에 문의했다. 하지만 이날 이 상무는 10시간 가까이 조사를 받고 4시간여에 걸쳐 꼼꼼히 조서까지 검토한 뒤 귀가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꼿꼿하게 앉아서 잘 답변했다”고 말했다. 이 상무의 이날 출석 모습은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한 ‘각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상무의 휠체어 출석에 대한 검찰의 반응은 다소 지나친 감이 있다. 서부지검은 3~4개월 동안 한화그룹과 태광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 수사 중이다. 수사가 길어지면서 ‘싹쓸이식 수사·무리한 수사’란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고령의 이 상무가 구급 침대에 누운 채 출석하자 적잖이 부담을 느꼈을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상무가 불법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증명해야 할 검찰이 이 상무의 출석 태도를 비판하려는 듯 기자들에게 과거 기사를 보낸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지난달에도 서부지검은 논란에 휩싸였었다. 남기춘 검사장이 검찰 내부 통신망에 한화그룹 수사에 대한 소회를 적은 글을 올린 것이다. “한화그룹이 김승연 회장이 지분을 갖고 있는 회사의 부채를 계열사 자금을 동원해 갚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기자들이 한화의 해명을 사실인 양 앵무새처럼 옮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남 검사장은 서부지검의 수사를 비판한 기사를 보고 글을 적었다고 한다.

 기업의 편법 행위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안다. 검찰이 쉽지 않은 수사를 하느라 고군분투하는 자신들을 알아주지 않는 데 대해 서운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위한 공부가 필요하다. 수사로 말하는 게 검사 아닌가.

정선언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