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환호 안 들려도 … 준석이 ‘1승 꿈’은 불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겨울바람이 매서웠지만 충주성심학교야구부는 훈련 열기로 뜨거웠다. 4일 충북 충주야구장에서 양인하 선수가 타격 훈련을 하고 있다. [충주=정시종 기자]


“어차피 공장에 갈 텐데, 왜 잘 살아야 하나요. 저 좀 내버려 두세요.”

 소년은 울었다. 말은 없었다. 이태 전 이맘때 충주성심학교에 전학온 홍준석(18)은 2급 중증청각장애인이다. 그리고 2011년, 홍준석은 충주성심청각장애인야구부 주장이 됐다. “어른이 되면 직업 없이 장애인 연금 수십만 원으로 살겠다”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충주성심학교는 청각장애인 특수학교다. 야구팀은 조일연 당시 교감의 주도로 만들어 졌다. 2002년 9월 프로야구 쌍방울 외야수 출신의 박상수(42) 감독은 8년째 지휘를 맡고 있다. 박정석(44) 야구부장은 “비장애인과 겨루는 정규대회에서 아직 승리를 거둔 적이 없어요.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야구를 하면서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습니다”라고 말했다.

 희망은 기적으로 연결됐다. 목소리를 잃었던 소년이 목청껏 ‘파이팅’을 외치고, 꼴찌들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이 학교 야구부를 배경으로 한 영화도 만들어졌다. ‘투캅스’ ‘공공의 적’으로 명성을 날린 강우석(사진) 감독의 신작 ‘글러브’는 오는 20일 개봉한다. 충북 충주 시내에서도 차로 15분 여를 들어가야 하는 외진 곳. 꽝꽝 언 논두렁 옆에 터를 닦아 세워진 성심학교 야구장에 들어섰다. 신묘년 첫 훈련이 열린 4일, 23명의 부원들이 둘씩 짝을 지어 캐치볼을 하고 있었다. 너무나 고요했지만, 너무나 뜨거웠다.

 ◆친구의 목소리를 듣다=연제상(17)은 11살 때 일반 초등학교에서 성심학교로 전학왔다. 비장애인 친구들은 양쪽 귀에 큰 보청기를 끼고, ‘어버버버’ 소리를 내는 그를 따돌렸다. “중학생이 돼서도 초등학교 2학년생과 놀았어요. 여전히 목소리를 내지 않았고요.” 박정석 부장이 연제상의 수화를 읽어줬다.

 연제상은 2년 전 야구부에 들어와 친구 서길원(16·포수)을 만나며 변화했다. “제상이 형은 늘 자신감이 없었어요. 크게 목소리를 내보라고 졸랐죠.” 6개월 뒤 연제상이 드디어 소리를 질렀다. “봉황대기 대회였어요. 형이 정말 큰 소리로 ‘와!’ 하고 외쳤죠.”

 ◆못된 짓 이제 안해요=홍준석은 중학교 2학년까지 일반 중학교에 다녔다. 동네 친구들과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다. 오토바이를 타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도심을 질주했다.

 처음에는 힘들다며 반항하던 홍준석이 야구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청각장애인은 경기장에서도 철저하게 혼자다. 코치나 감독이 외치는 소리도 듣지 못한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공 하나 잡기도 어렵다. “야구를 하면서 저도 희망과 목표가 생겼어요. 나도 남들처럼 ‘평범한’ 직장인이 될 수 있다는.” 홍준석의 말이다.

 이현배(17)·장효준(15)·김권세(15)·김준호(17). 뭐가 그렇게 좋은지 입이 째져라 웃는 이들 ‘꼴찌 4인방’은 야구팀에 와서 주야야독(晝野夜讀)에 열심이다. 김준호가 말했다. “야구를 하면 피곤하고 힘들어요. 하지만 야구를 하면서 할 수 있다는 꿈을 갖게 됐어요. 훈련이 끝나면 숙소에 와 새벽까지 공부를 하는 이유에요.”

충주=서지영 기자
사진=정시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