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카모토 신야 〈쌍생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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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카모토 신야의 인성탐구

츠카모토 신야(塚本晋也)는 한국영화팬, 특히 부산영화제 관람객에게는 인기있는 일본영화감독이다. 이와이 슈운지 감독처럼 정작 자기들 나라 일본내에서는 그다지 인정받고 있는 감독은 아니면서도 한국에서는 마치 일본최고의 작가 감독쯤으로 대접받고 있다. 그 자신도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관객과의 대화시간에 이런 황송한 접대에 대해 어안이 벙벙할 정도라며 한국팬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부산영화제가 국제영화제라는 타이틀로 첫 출범한 1회에 그의 작품 〈동경의 주먹〉이 소개되었을때 금단의 나라에서 날아온 현란한 비쥬얼 충격영상에 많은 한국의 영화팬들이 열광했었다. 그리고 작년 그의 덜 다듬어지고 왠지 채 작업이 끝나지 않은 듯한 작품이라는 느낌마저 들었던 〈총알발레〉를 갖고 직접 부산을 찾았을때 한국의 영화팬은 거의 광적으로 그를 떠받들었다.

올해 츠카모토 신야는 (왕가위나 관금붕, 혹은 키티노 타케시처럼 직접 부산을 찾아오는 감독군 중에서는) 4회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스타감독으로 그 인기를 지속시켰다. 그가 다시 들고온 영화는 일본 메이저 영화사 작품 〈쌍생아〉이다. 그의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그는 이 영화의 감독, 촬영, 각본, 편집을 혼자 해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이전 작품과는 달리 일본의 메이저 영화사인 도호(東寶)의 막강한 마케팅과 지원속에서 제작을 끝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전에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인디 기수 츠카모토의 아마추어적인 특성을 여전히 담고 있으면서, 그에 덧붙여 이전에 그의 작품에서 느낄수 있었던 어떤 러프한 감각을 최대한 줄일 수 있었다. 그것은 그가 그만큼 영화적 연출력을 높였다는 말과 동시에 독립영화작가에서 이젠 메이저감독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 〈쌍생아〉는 1920년대 일본의 탐정소설 작가 에도가와 람포가 쓴 〈쌍둥이~ 어느 사형수가 고백한 이야기(雙生兒~ある死刑囚が敎誨師にうちあけた話~)〉의 원작 단편소설을 츠카모토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로 옮긴 작품이다. 원작에서 다루고자 한 것은 1920년대 일본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던 계급간의 대립을 통한 인간본성의 선과 악에 대한 탐구였다. 그것은 군국주의나 이기주의같은 우리식 인상이나 접근이 아니라, 계급사회 자체가 갖고 있는 상호 모순과 대립, 그리고 내면에 존재하는 선에 대한 관념과 자기부정, 자기인식이 뒤섞인 복잡한 양상을 풀어나가는 것이다.

대체적인 이야기구조는 다음과 같다.

계급의식이 아직 남아있던 일본 메이지 시대 말기. 다이토쿠지 의원의 상속자인 다이토구지 유키오(모토키 마사히로)는 명예와 부를 가진 젊은 의사였다. 그에겐 화재 속에서 살아남은 아름다운 아내 '린'과 주위사람의 존경을 받는 의사 아버지와 전형적인 일본 어머니가 있었다. 아내는 화재 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할 뿐이지 이들은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들 가족에게 알 수 없는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아버지,어머니가 차례로 의문을 죽음을 당하고 유키오마저 알수 없는 사람의 공격으로 뒷마당의 말라버린 우물 속에 갇히고 만다.

이때부터 영화는 분명 다중적인 스토리 구조를 엮어나간다. 우물 속의 유키오와 우물 밖에서 그의 행세를 하게되는 스테키치의 인생역정이 차례로 되살아난다. 태어날때 쌍둥이였지만 한쪽은 흉측한 피부 때문에 버려졌고, 그 갓난아기가 이제 유키오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비운의 형제의 사이에 '린'이 존재하는 것이다. '린'은 현재의 유키오의 아내이기 이전에 바로 스테키치의 아내였기 때문이다. 스테키치와 린의 잠자리는 이들 형제의 알수 없는 인식의 교류점이 된다. 그것은 마치 〈파리넬리〉와 〈데드링거〉에서 볼 수 있었던 한 핏줄 형제의 성의식과 운명공동체적 느낌을 강조하며 갇힌 자의 고통을 배가시키는 작용을 하게 된다.

그리고 관객은 마지막에 우물 속 인물의 최후와 스테키치의 최후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듣지 못한다. 그것은 이런 영화의 마지막을 다루는 하나의 방식인 것이다. 그것은 바로 린의 옆에 있는 인물이 스테키치일 경우와 유키오일 경우 모두 상당한 의미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츠카모토 신야가 추구하는 괴기스러움을 최대한 이끌고 있다. 그것은 '린'의 그로테스크한 헤어스타일부터 시작하여 1920년대 일본 주거구조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이제는 일본인들 자신들의 기억속에서도 사라져버렸을 '부라꾸(部落 buraku)'같은 소외받은 계층의 이야기를 통해 비정상적인 계급향상과 그 몰락을 묘사한 것일수도 있다.

감독은 그러한 일본적 소재를 통해 선악의 이야기를 꺼집어낸 것이다. 형은 우물 속에서 영문도 모른채 있고, 동생은 형수-그리고 자신의 이전 아내이기도 한-를 차지하여 잃어버린 과거를 보상받으러 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은 우물 속 인간이나 우물 밖 인간이나 그들은 한 핏줄, 혹은 한 영혼인 것이다. 그것은 '린'의 혼란이며 곧 관객의 혼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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