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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테마읽기] FTA의‘F’자도 모르던 한국이 미국의 고삐를 쥔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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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
김현종 지음
홍성사
499쪽, 1만9000원

“한국에는 보이지 않는 무역 장벽이 많다. 자동차 환경 기준도 미국보다 많이 엄격하다.”

 최근 타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협상에서 미국은 줄곧 ‘보이지 않는 장벽’을 주장했다. 한국에서 미국 차가 한 해 1만대도 안 팔리는 이유를 자동차 경쟁력에서 찾기보단, 한국 탓으로 돌렸다.

 “한국이 최근 자동차 번호판 모양을 정사각형에서 직사각형으로 바꿨다. 한국에 자동차를 수출하기 위해 생산라인을 개조해야 한다. 왜 이런 정책을 도입하나.”

 2004년에도 이랬다. 닮은 꼴이다. 한·미 FTA를 논의하기 위한 첫 만남부터 미국은 불만을 얘기했다. 그러나 협상 결과는 한국의 판정승에 가까웠다. 농민단체 등 일부의 반발이 있었지만, ‘남는 장사’라는 게 중론이었다.

 당시 한국은 “FTA의 ‘F’자도 모르는”(유럽연합 부집행위원장) 나라였다. 5년 여가 지난 지금, 한·아세안 FTA 등 5개의 협정이 발효됐고, 한·미 FTA 등 3개 협정의 국회 비준을 앞두고 있는 ‘FTA 선진국’이 됐다. 이렇게 되기까진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현 삼성전자 해외법무사장)의 역할을 부인할 수 없다. 그는 ‘동시다발적 FTA’ 전략을 입안하고, 2007년 한·미 FTA를 타결시킨 주역이다. 그가 한·미 FTA 협상의 뒷얘기를 풀어놨다.

 김 전 본부장이 말하는 통상 협상의 핵심은 ‘주도권’이다. 2007년, 미국이 양보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협상 결렬문을 준비했고, 이 사실을 USTR에 슬쩍 흘려 조바심을 내도록 했다. 배짱과 전략을 갖춰 한국이 주도하는 협상을 한 셈이다. “한·미 FTA를 보는 미국의 시각이 경제통상 협상을 넘어 한미동맹 차원임이 확실했다”는 언급은 지금도 의미하는 바가 적잖다.

 일본에 대한 언급도 눈에 띈다. 한·미 FTA 협상을 시작하기 직전, 주미 일본 대사관 직원이 미 행정부 고위관료를 찾아가 “한국 사람들은 믿을 수 없고 정직하지 않다”고 했다고 한다. 최근 한·미 FTA 추가 협상 타결 후, 일본 언론이 “한국이 일본을 추월하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과 궤를 같이하는 셈이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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