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강풍 뚫고 10분 만에 15명 구조 … 해경 3009함 김문홍 함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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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파도를 이기는 혹독한 훈련, 15명의 조난자를 10분 만에 구한 해경 3009함의 노하우다. 조타실에서 포즈를 취한 김문홍 함장. [해경 제공]


‘뱃사람 리더십’. 그게 있었다. 거친 파도를 헤치고 15명을, 그것도 10분 만에 모두 구한 해경의 성탄기적 뒤에. 리더십의 주체는 해경 3009함 김문홍(52·경정) 함장이다. 그와 생사를 같이하는 승조원은 51명. 경찰관 40명에 전경 11명이다. 뱃사람 리더십의 원동력은 ‘하나’ 정신이다. 파도와 같이한다. 거칠 땐 거칠게, 부드러울 땐 부드럽게 대응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전제조건이 하나 있다. 단 한 명이라도 훈련에서 이탈하거나 부족하면 ‘뱃사람 리더십’은 죽는다는 게 김 함장의 지론이다.

훈련방식은 두 가지다. 첫째는 파도가 거셀 때를 가정한다. 어떤 경우든 훈련은 혹독하다. 예외는 없다. 거친 파도 속에 부유물을 두고 구출작전을 한다. 훈련 중 대원들이 파도에 휩쓸려 목숨이 위태로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처음엔 가장 기본적인 상황 배치 훈련부터 매일 1∼2시간씩 반복한다. 새벽 3시쯤 상황이 발생하면 침실이나 식당에 있다가도 전투복을 갖춰 입고 레이더·조타실·엔진기관실·구조단정·벌컨포 등 자신이 담당하는 곳으로 달려가야 한다.

김문홍 함장이 지휘하는 해경 3009함(위 사진). 해경 대원들이 함정에 거치된 기관단총을 점검하고 있다(가운데). 3009함 대원들이 26일 오전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전복된 페리 2호 승객들을 구조하고 있다(아래). [해경 제공]

 파도와의 싸움에서 이기면 생명이 위독한 구조자 응급조치 훈련이 기다리고 있다. 이 역시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훈련한다. 40명의 경찰관이 3교대로 4시간씩 하루에 두 번 근무하기 때문에 전 대원이 모여 훈련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또 다른 배에 불이 났을 때 불을 끄는 소화 훈련, 배가 침몰하면 물을 막아주는 방수훈련, 불법 어선 단속 등 상황을 가정한 훈련이 3개월간 이어진다.

 성탄절 기적도 이런 혹독한 훈련이 있어 가능했다. 26일 신안군 흑산면 만재도 남방 15㎞ 해상에서 발생한 화물선 침몰 사고 때도 3009함은 3003함보다 먼 거리(약 1㎞)에 있었지만, 먼저 도착했다. 그리고 살을 에는 듯한 초속 20여m의 강풍과 4m 이상의 높은 파도로 한 치 앞도 보기 어려운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10여 분 만에 15명의 귀중한 생명을 살렸다. 평소 ‘신속’을 강조한 김 함장의 훈련 결과였다. 구조작전이 마무리될 무렵 3003함이 도착했다.

 김 함장은 어떤 상황에서도 현장에 도착하면 바람의 방향부터 살핀다. 바람이 부는 쪽으로 고속단정을 내리면 구조 작업의 절반은 성공한 셈이기 때문이다. 평소 거친 파도에 숙련된 팀원들의 구조 능력도 도움이 됐다.

 둘째는 파도와 주변이 고요할 때 하는 기습훈련이다. 이는 주로 야밤이나 새벽시간에 효율적으로 중국 불법어선 단속을 위해서 한다. 가장 중요한 건 고속단정을 조용히 배에서 내리고 조용히 중국어선을 기습하는 훈련이다. 팀원들의 안전을 위해 기상 상황 등에 따라 주로 주간에 1시간가량 한다. 이땐 실전을 가상해 헬멧과 방패, 권총, 연막탄 등 단속 장비를 모두 착용한다. 단속은 가장 방심하기 쉬운 오전 4∼6시 이뤄진다. 우선 경비정의 불을 끈 뒤 7.7m(3.5t)급 고속단정 2척을 내린다. 경비함이 움직이면 중국 어선의 레이더망에 쉽게 걸리기 때문이다.

 그 결과 3009함은 올 3월 현장에 투입됐으나 불법 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 46척을 붙잡았다. 1000t급 이상을 6척 보유한 목포해경의 단속실적인 134척의 34%에 달한다. 전체 해양경찰 소속 경비정 가운데 1등이다. 최근엔 적발하기도 어렵다는 무허가 조업을 하던 중국어선 9척을 검거하기도 했다. 김 함장은 1986년 순경(해경 특채)으로 해경과 연을 맺었다.

 그는 혹독하지만 따뜻하다. 불법 어업 단속·응급 구조 현장에서 내리는 그의 명령엔 거부할 수 없는 엄격함이 있다. 하지만 부하 직원과 전경 대원들에겐 생일 케이크와 양말·속옷 등 선물을 잊지 않는 자상한 아버지다. 성난 파도처럼 거칠게 밀어붙이지만, 잔잔한 파도처럼 따뜻하게 감싼다.

 유거상 순경은 “항해사와 기관사, 나포조 모두 최고의 해양경찰관과 전경으로 구성됐다는 자부심이 있다”며 “중국 어선 등을 단속하며 어려운 일을 많이 겪다 보니 동료애가 더 깊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목포=유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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