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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빚어낸 사계절, 눈과 코와 입의 행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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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와·가·시. 한자로 화과자(和菓子)다. 화(和)는 화합이라는 일본의 전통 정신을 상징하지만 음운상 단박에 화사한 꽃이 그려진다. 허 화백도 예외는 아니어서 ‘과자가 얼마나 예쁘기에 화과자라 했을까?’라는 의문을 품는데 관계자들이 오해가 생겼다며 정중하게 한자를 정정해 준다. 이미 뜻은 알고 있으나 화(花)도 결국 화(和)의 수단 중 하나라며 허 화백이 실례를 재치로 넘기며 사람의 손으로 빚어낸 계절의 향연, 꽃을 맛보고 싶다며 시마네(島根)현 마쓰에(松江)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무궁화 화과자를 즐기며 떠올려 본 한·일 관계
한적한 길가에 자리잡은 화과자 전문점 후류도(風流堂) 간판이 마음에 들었는지 ‘화합을 위한 꽃이 있는 곳에 풍류가 빠질 수 없다’며 허 화백이 호감을 보인다. 일단 출발이 좋다. 매장 안에 진열된 수십 가지 화과자를 볼 때는 마치 꽃놀이 온 관광객 같은 분위기마저 풍겨 이제야 교토가 아닌 마쓰에를 택한 것에 대한 의문이 풀린 듯 보인다. 허 화백과 같은 손님을 수도 없이 경험했는지 백발이 인상적인 나이토(內藤) 사장이 녹차 이야기로 실마리를 푼다. 일본 내에서 다도로 유명한 지역이 교토(京都), 가나자와 그리고 마쓰에로 차 소비량은 시즈오카 다음으로 2위라고 한다.

전국 평균 다섯 배의 양이다. 녹차 소비가 많다는 것은 화과자 소비도 많다는 뜻이며 그만큼 종류가 다양하고 솜씨도 뛰어날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 이 말을 입증하듯 사장이 준비한 화과자는 앙증맞은 모양에 미려한 색채와 절제된 감각이 인상적이다. 허 화백을 비롯한 일행 모두 먹기에 아까운 듯 눈으로 맛을 음미하고 있는데 ‘사계절을 모두 담았다’며 지나치기 쉬운 특징을 알려준다.

예로부터 일본인들은 화과자를 통해 사계절을 즐겼다. 봄이면 사쿠라모치(櫻もち)를, 신록의 계절에는 구사모치(草もち·풀떡)를, 무더운 여름에는 미즈요캉(水ようかん)을 즐기는 형식이다. 겨울이라 눈 모양의 화과자만으로 충분하지만 일행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은 사장의 배려다. 여기에 사쿠라 대신 무궁화 화과자로 봄을 표현했으니, “이 정도면 국빈급 대우”라며 허 화백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과한 칭찬이라며 사장이 쑥스러운 듯 재빨리 화과자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다.

화과자는 맥주순수령처럼 물·설탕·육계·팥·찹쌀·쌀·보리·밀가루·마·고구마·한천·칡·유자·감·매실·밤·녹차 등 천연 재료를 이용해 찌거나 굽거나 반죽한 후 모양을 내어 마무리를 짓는다. 특히 섬세하고 정교한 손놀림으로 탄생하는 꽃·나무·동물 등의 다양한 모양은 감탄사를 연발하기에 충분하다. 화과자는 수분 함량에 따라 크게 나마가시(生菓子)·한나마가시(半生菓子)·히가시(干菓子)로 나눌 수 있다. 나마가시의 대표는 모치·단고·만주다. 한나마가시는 모나카나 요캉, 히가시의 대표적인 화과자로는 센베이를 꼽을 수 있다. 이 중 모나카와 센베이 등은 전통과는 약간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당(唐)과자와 서양과자의 영향을 받아 재창조된 형태라고 한다.

“이제 눈은 충분히 즐겼으니 입으로 사계절을 느껴보자”며 허 화백이 시식을 제안한다. 행여 모양이 망가질까 조심스럽게 한 입 먹으니 화과자의 부드러운 촉감이 일순간 입안의 긴장을 풀어준다. 이어 천연 재료가 함축하고 있는 향기가 퍼져 후각을 자극한다. 다만 천편일률적인 단맛이 아쉬운데 바로 이때 녹차를 곁들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화과자의 강한 단맛이 녹차의 은은한 향기와 맛에 녹아들어 새롭고도 미묘한 맛을 이끌어내는 것. 기념사진을 끝으로 일정에 마침표를 찍고 숙소로 돌아가는 허 화백이 “무궁화 화과자와 녹차의 관계처럼 한·일 두 나라가 보다 친숙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긴다.

화과자는 그때그때 먹는 게 최고
화과자는 아쉽게도 유통기간이 짧다. 천연 재료를 사용한 것이 장점이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오래 두고 먹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그래서 화과자는 시원한 바람이 통하는 그늘에 두는 것이 좋다. 장기 보관을 해야 한다면 냉장보다는 냉동이 좋다. 냉장을 하면 단단해지거나 쉽게 건조해지기 때문이다. 해동 시에는 상온에서 시간을 두고 자연스럽게 해동하는 것이 맛을 살리는 방법이다.

차는 물론이고 술안주·주전부리 등 다양한 쓰임새의 한과와 달리 오직 녹차를 위한 소모품 정도로 인식되는 화과자의 이미지도 발전을 가로막는 단점이다. 더불어 단조로운 단맛 역시 넘어야 할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최근 일본 내에서는 젊은이들이 화과자를 외면하고 다양한 먹을거리의 출현으로 화과자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는 것도 앞선 단점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후류도 사장 역시 이런 문제점을 타파하기 위해 전통의 고수와 변화 사이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화과자에서 한과의 오늘을 투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자치체국제화협회 클레어(Clair)와 한진관광의 후원으로 2년간 일본을 방문해 다양한 요리와 문화, 자연을 경험하고 그 체험을 독자와 나눌 예정입니다.

이호준 ‘식객’ 취재팀장
만화 허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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