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무도인 40년 유병용씨

미주중앙

입력

30대에 홍콩영화 ‘흑무사’ 주연…배우 꿈 접고 종합무도 대부로
76세 되는 내달 무술대회 개최…이틀에 한번꼴 발차기 1000번

유병용 사범이 지난 15일 할리우드에 위치한 자신의 체육관에서 아침 일찍부터 나와 구슬땀을 흘리며 발차기 연습을 하고 있다. 이틀에 한 번씩 1000번의 발차기를 한다고 한다. 40대 처럼 보이는 유병용 사범은 다음달 76세가 된다.

“나를 어디서 찾았다고? 아~맞아. 내가 거기에 출연했었지. 그런 기록이 아직도 남아 있던가?”

그의 과거를 알게된 건 전설적인 무술배우 ‘이소룡’(브루스 리)의 한국 팬들이 만든 한 인터넷 카페에서 였다. 이소룡은 1940년 11월27일 태어났다. ‘아뵤오~’라고 외치며 세상을 향해 거침없는 하이킥을 날렸던 이소룡의 탄생 70주년을 맞아 최근 그를 기리는 인터넷 팬 카페에는 1970년대 홍콩 무술영화의 획을 그었던 작품들과 출연배우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이소룡의 팬들은 그곳에서 이소룡의 마지막 작품 ‘사망유희’와 동시에 만들어진 홍콩 골든 하베스트의 영화 ‘염굴신탐’(한국에서는 ‘흑무사’라는 이름으로 상영)의 한인배우 ‘유병용’에 주목하고 있었다.

‘지.아이.조’에 출연한 영화배우 이병헌 ‘닌자 어쌔신’에 출연한 가수 비(정지훈)가 할리우드 산을 오르기 30년 전에 이미 한류스타의 꿈을 꾸었던 그를 직접 만나게 된 건 12월 초 한 체육관에서다. 워너 브라더스의 앨런 혼 사장 CBS스튜디오의 마이클 클라우스맨 전 사장 등이 다니는 할리우드의 태권도장이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져 찾아간 체육관이 유병용의 소유였다.

- 미국에는 언제 오셨어요.

“1964년에 50달러 들고 UC버클리로 유학왔어요.”

- 1960년대면 고생 좀 하셨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떠날 때 4년만 미국에 살다 오면 큰 갑부가 되있을 것이라고 큰 소리 빵빵쳤는데 막상 샌프란시스코 도착했더니 갈 곳이 없어요. 어떻게 하나 궁리를 했지요. 영어도 익숙치 않아 노숙자(homeless)라는 단어와 할러데이(holiday)가 혼동이 됐어요. ‘할러데이 인’이라는 곳에 무작정 찾아 들어갔어요. 사전 찾아보니 인(Inn)은 ‘자는 곳’이래요. 할러데이 인이라고 하니 노숙자가 자는 곳이라고 생각했지요.”

- 할러데이 인은 호텔인데요.

“안에 들어갔더니 뭐라뭐라 ‘킹’(King)이냐고 물어요. 어이쿠 내가 어떻게 미국의 ‘왕’과 함께 자요.‘노’ 했지요. 또 뭐라뭐라 ‘퀸’(Queen) 해요. 제가 언감생신 미국의 여왕과 잘 수 있나요. 노(No) 했지요. 조금 있다 ‘더블’(Double)이냐고 물어요. 두 명이 자는 거구나. 오케이 했지요. 방에 들어가 있는데 밤12시가 되도 아무도 안와요. 뚠 눈으로 미국에서 첫 밤을 보냈어요. 지금이야 그게 킹 사이즈냐, 퀸 사이즈냐, 더블이냐 침대사이즈를 묻는 것인 줄 알지만 그때는 아무 것도 몰랐어요.”

- 돈은 어떻게 지불하셨어요.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음식 메뉴가 눈에 들어와요. 있는데로 다 시켰지요. 야~ 역시 부자나라 ‘아메리카’구나. 노숙자에게도 이렇게 잘해주는 구나. 남은 음식은 나중에 먹으려고 쓰레기 봉투에 담아 싸가지고 나오는데 저를 불러요. 방값하고 식사대하고 53달러를 내라는 거예요. 주머니에 있던 50달러를 모두 줬지요.”

- 망신을 제대로 당하셨네요.

“다른 노숙자들은 음식을 찾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져요. 나는 그게 아니지. 그래도 배가 너무 고프거든요. 곰팡이가 난 핫도그가 보이는데 나도 모르게 손이 이미 입으로 갔어요. 몇 발자국 것다가 다 토했어요. 야~ 한국 생각이 나는데…밤새 우는 거지. 그때 다짐을 했어요. 절대 나는 미국에서 처량하거나 초라하게 보이지 않겠다.”

- 영화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요.

“돈을 벌려고 UC버클리 학생과 지역주민들을 상대로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었어요. 홍콩의 영화 제작사인 골든 하베스트의 사장이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 놀러왔다가 제가 태권도 시범을 하는 것을 우연히 본 모양이에요. 홍콩에 가서 영화를 찍자고 연락이 왔지요. 마침 정창화 감독이 찍는 ‘흑무사’에 1974년 출연하게 됐지요. 8개월 동안 촬영했어요. 무척 고생했지요. 홍콩, 마카오, 한국을 돌며 찍었지요.”

- 이소룡의 마직막 영화인 ‘사망유희’에도 출연했다고 들었습니다.

“1974년 이소룡이 갑자기 죽었지요. 영화 속 이소룡은 행방불명된 것으로 처리되고 저는 이소룡의 친구로서 그의 행방을 찾는 역할을 했어요. 하지만 흑무사와 촬영이 겹치면서 사망유희 촬영분은 모두 빠졌어요. 그거 아세요? 이소룡은 어머니가 포루투칼 사람이예요. 이소룡은 머리도 검은색이 아니어서 염색하고 영화에 나온거예요.”

- 영화는 더 이상 찍지 않았나요.

1974년 중앙일보에 실린 영화 [흑무사]의 광고.

“흑무사가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예요. 저는 무술인이지 배우는 아니었어요. 흑무사 영화촬영이 끝나고 뉴욕의 연기스쿨에 들어갔지요. 연기 공부 제대로 해보고 영화를 찍겠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하지만 맏게 되는 역마다 웨이터나 갱스터 같은 나쁜 역할만 들어오는 거예요. 결국 포기했지요.”

- 그 후에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젊었을 때는 태권도 시합과 시범을 하며 전 세계를 다녔지요. 지금은 태권도, 주짓수, 카디오 등 각종 운동과 영화관, 댄스 스튜디오, 녹음실 등을 함께 갖춘 ‘월드스포츠센터’를 할리우드에서 운영하고 있어요. 3만2000스퀘어피트 규모입니다. 덴젤 워싱턴, 척 노리스 등 할리우드 배우와 할리우드 제작사의 임원들이 많이 제자로 들어왔지요. 요즘에는 내년 1월15일 76세 생일잔치겸 열리는 무술 시범대회를 앞두고 열심히 운동하고 있습니다.내 꿈을 찾아 가는 거예요. 이제서야….”

LA중앙일보 김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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