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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몰자 야스쿠니 합사 일본 정부 지원은 위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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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일본 군국주의의 대표적 상징물인 야스쿠니 신사. 일본의 극우 단체 및 일부 정치인이 매년 이곳을 참배해 외교 문제가 빚어지고 있다. [중앙포토]

일본 정부가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전몰자의 합사를 지원한 것은 정교 분리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판결이 나왔다.

 지지(時事) 통신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오사카(大阪) 고등법원은 21일 제2차 세계대전 전몰자 유족 9명이 야스쿠니 신사의 합사 취소를 요구한 소송에서 “국가가 개인 정보를 신사 측에 제공한 것은 종교행위의 원조·조장에 해당하는 것으로 헌법의 정교 분리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일본 법원이 정부의 전몰자 야스쿠니 합사 지원을 정교 분리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결한 것은 합사를 둘러싸고 제기된 소송에서 처음이다. 오사카 고등법원은 2005년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린 기관이다.

 마에사카 미쓰오(前坂光雄) 재판장은 일본 정부가 전몰자의 합사를 지원한 것에 대해 “합사에 국가의 협력이 불가피했다고까지 할 수 없으며, 합사가 원활하게 이뤄지는 데 (국가가) 큰 역할을 한 사실이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일본 후생성은 1956년부터 지방자치단체에 지시해 전몰자의 신상조사표를 야스쿠니 측에 제공, 합사 명부에 해당하는 제신부(祭神簿)나 영생부(霊璽簿)를 만드는 데 협력했다. 또 지자체를 통해 유족이 합사 통지에 협력하도록 하는가 하면 사무 처리 경비를 국고에서 부담했다. 마에사카 재판장은 정부의 합사 지원이 전몰자의 유족 지원이라는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국가가 야스쿠니 신사의 합사에 영향을 미친 행위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법원은 그러나 야스쿠니 신사 합사 취소를 요구한 소송은 기각했다. 유족들은 소장에서 “야스쿠니 신사가 유족들의 동의 없이 제사를 계속하는 것은 경애추모의 정에 기초한 인격권 등을 침해한 것”이라며 사망자와 사망일 등을 기록한 제신명표(祭神名票)와 제신부 등에서 이름을 말소할 것과 유족 한 명당 위자료 100만 엔(약 1300만원)을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법원은 “야스쿠니 신사의 교리나 종교활동에 대해 (유족들이) 내심 불쾌감과 혐오감을 나타낸 데 불과하며 법의 규정으로 보호될 수 있는 구체적인 권리·권익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유족들은 상고할 방침이다.

 변호인단의 가지마 히로시(加島宏) 사무국장은 판결 후 기자회견에서 “(법원이) 헌법 위반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아버지가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있는 유족 스가와라 류켄(菅原龍憲)은 “유족의 뜻을 무시하면서까지 신사가 합사할 자유가 어디에 있느냐. 안타깝다”고 판결 내용을 비난했다.

 오사카 등 일본 내 7개 자치단체에 거주하는 전몰자 유족 9명은 야스쿠니 신사가 태평양전쟁 당시 전사·병사한 아버지와 형제를 합사한 것에 대해 취소를 요구했으나 응하지 않자 소송을 제기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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