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기박사,「아프리카, 아프리카」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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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23년간 방랑하면서 진리가 발길에 무진장 차이는 듯했다. 내가 만일 승려였다면 득도하였을 것이고, 내가 만일 시인이었다면 훌륭한 시를 썼을 것이다.' `한국인 슈바이처'로 불렸던 한상기(69.韓相麒.미국 조지아대학 부교수)
박사가 저서 「아프리카, 아프리카」(생활성서사)
를 펴내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속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농학박사인 한씨는 지난 71년 서울대 교수라는 안정된 자리를 버리고 나이지리아로 건너가 그들과 동고동락해왔다. 그는 현지에서 아프리카인들의 주식 작물을 연구해 내병성이 강한 품종을 개량함으로써 `농민의 왕'이라는 칭호와 함께 추장으로 추대되는 영광을 안았다.

그의 삶은 출세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굶주림과 병마로 고통받는 대륙에서 일생을 보냈던 슈바이처 박사를 떠올리게 한다. 71년 5월 가족과 함께 초록의 품속에 안겼던 한씨는 94년 1월 정든 그곳을 떠나기까지 아프리카인으로 살면서 그 영혼과 진리를 찾으려 애썼다.

자전적 성격의 이번 책에서 한씨는 자신의 성장과정과 농학을 택한 동기, 나이지리아에 정착하기까지의 어려움, 식량작물 개량과 보급과정 등을 소개한 뒤 아프리카 종족의 특성과 풍물 등을 그들의 신관(神觀)
과 함께 자세히 설명했다.

또 거대한 위용의 산과 호수, 원시림이 주는 아름다움과 경외의 세계도 들려주며 아프리카에서만 볼 수 있는 나무들을 통해 신에 대한 믿음을 고백함으로써 농학자이자 가톨릭 신자인 자신의 종교적 깊이를 짐작케 한다.

한씨의 이번 저서는 외지인의 시각에서 아프리카를 바라보고 분석한 게 아니라 생애를 걸고 아프리카를 선택해 아프리카인들과 고락을 같이한 뒤 쓴 것이어서 그 생생함과 구체성이 유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아프리카에서 생활하는 동안 가장 큰 감명을 받은 것은 자연 속에서 신과 하나되어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경이었다. 맨발로 거친 숲을 걸어다니고 늘 병마의 위험 속에 노출돼 있지만 아프카인들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있는 사상과 종교심을 갖고 있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아프리카라고 하면 사막과 모래바람, 빽빽하고 울창한 정글, 말라리아와 에이즈, 기아에 허덕이는 퀭한 눈동자와 종족분규를 떠올리기 쉬우나 내면에는 엄청난 보석이 숨겨져 있다는 것. 한씨는 '한 사람의 자연과학도로서 최선을 다해 미지의 대륙에 숨겨진 진리를 찾으려 노력했음을 삶의 가장 큰 보람으로 느낀다'고 말한다.

인류학의 보고서격인 이 책은 아프리카인들의 생활양식, 각 종족과 나라의 고유축제와 전통 등을 통해 그들의 정신세계를 소개하고 있어 자료적 가치도 크다. 다종다양한 동식물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줌은 물론이다.

한씨는 '내가 화가였다면 멋진 그림을 그렸을 것이고, 수도자였다면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나 불행히도 자연과학도라서 그 넓고 깊은 진리의 호수에서 커다란 물고기도 제대로 낚지 못했음이 매우 아쉽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우간다의 캄팔라에서 사람들이 선(善)
이라고 보는 스톡새와 악(惡)
이라고 보는 까마귀가 한 도랑에서 같이 물을 마시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그동안 나의 앎이 매우 헛된 것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한씨가 낸 아프리카 관련서는 「신비의 땅 아프리카」(90년)
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다.

[서울=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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