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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학원비 벌려 몸 파는 주부,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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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0일 자리를 함께한 소설가 박범신(오른쪽)씨와 중국의 여성 작가 장윈. 양국 문예지에 동시 연재했던 박씨의 장편 『비즈니스』와 장윈의 작품 『길 위의 시대』가 나란히 두 나라에서 번역 출간됐다. [연합뉴스]

소설가 박범신(64)씨가 새 장편 『비즈니스』(자음과모음)를 냈다. 계간 문예지 ‘자음과모음’ 올 가을·겨울호에 분재했던 것을 묶었다.

‘박범신씨가 ∼했다’라고 시작하는 기사 쓴 게 올해만 세 번째다. 그는 지난 4월 연애소설 『은교』를 출간했고, 지난달부터는 본지 인터넷 홈페이지(www.joongang.co.kr)에 세태 비판소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를 연재하고 있다. <본지 11월 1일자 31면> 요즘 젊은 세대식으로 거칠게 표현하면 ‘고삐 풀린 생산력’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새 소설은 ‘그 중 한 권’이 아니다. 박씨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박씨 표현대로라면 한국과 중국간의 ‘스리쿠션’ 방식이 아닌 직거래 방식으로 출간된 첫 소설이다.

그동안 중국소설은 대개 유럽을 거쳐 한국에 소개됐다. 유럽에서 히트했거나 노벨문학상 유력 작가라는 꼬리표가 필요했다. 스리쿠션 방식이다. 이런 관행에서 벗어나 한·중 소설 직거래가 필요하다는 게 박씨 주장이다. 두 나라가 문화적 혈맹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는 중국의 여성 작가 장윈(56)의 『길 위의 시대』와 함께 자음과모음, 중국의 문예지 ‘소설계’에 각각 동시에 연재됐었다. 이번에 박씨 소설은 중국어로, 장윈 소설은 한국어로도 각각 번역돼 두 나라에서 나란히 출간됐다.

 『비즈니스』는 박씨의 소설 이력에서 또 하나의 분수령을 이루는 작품이기도 하다. 십 년 넘게 추구한 존재론적 탐구에서 방향을 전환, 다시 현실로 눈돌린 첫 작품이기 때문이다. 10일 기자간담회에서 박씨는 “자본주의의 폭력성에 의한 인간성 유린이 도를 넘고 있는데 존재론적 질문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고 했다.

 새 소설은 표지부터 눈길을 끈다. 뒤태가 예사롭지 않은 여인이 소파 위에 등돌리고 누워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인은 소설의 화자인 여주인공이다. 경제력, 출신학교, 거주 지역 등에 따라 사실상 완강한 계급의 벽이 존재하는 신(新) 신분제 사회에서 아들을 명문대에 보내는 데 필요한 학원비를 벌기 위해 몸을 판다. 매춘은 가정주부의 비즈니스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비즈니스는 성공하지 못한다. 남녀간에 순정이 싹튼다. 소설 속에서나마 가정주부가 몸파는 현실은 살아남지 못하는 것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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