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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서 돌아온 우리 동네 스포츠 스타 이진아·이혜민 선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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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광저우아시안게임 여자 테니스 복식 8강 경기. 일본과 맞붙은 한국이 첫 세트를 6대 3으로 이겼다. 불안한 듯하던 2세트는 5대 6으로 일본이 역전승. 손에 땀을 쥐던 경기는 3세트에서 뒤집어졌다. 네트를 맞고 넘어간 공이 점수로 연결되며 3포인트를 득점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11대 9로 한국이 승리했다. 여자 복식의 이진아 선수(25·양천구청)는 당시를 “기적 같은 승리였다”고 떠올렸다.

기쁨과 아쉬움의 동메달

 대만과의 준결승전이 열린 날은 8강에서 이긴 그 다음날이었다. 일본도 그랬지만 대만은 누가 봐도 강호였다. 코트에 나가는 순간이 선수는 위압감이 몰려오는 걸 느꼈다. 1세트를 내주며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는 이 선수는 과감하게 밀어붙여 2세트를 따냈다. 하지만 포핸드 공격이 연달아 실패한 3세트는 결국 3대 10으로 대만이 승리했다. 이 선수는 동메달을 따는 데 만족해야만 했다.

 4년 전 도하아시안게임 때 여자부는 메달을 따지 못했다. 이번엔 메달을 따는 것 자체가 목표였기 때문에 단상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였다.

 “하지만 애국가가 울리지 않는 게 못내 섭섭하더라”는 이 선수는 “아쉬움과 기쁨이 교차했던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도하아시안게임 때 주전이 아니었으나 허리 부상을 당한 선수를 대신해 경기에 나섰다. 긴장을 많이 하고 준비도 덜 돼 비록 1회전에 지긴 했지만 이 선수는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무대였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매번의 경기가 다음을 위한 도약이라고 여기는 그는 테니스를 시작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계단을 밟듯 천천히 실력을 쌓아왔다. “중학교 땐 8강, 고등학교 땐 4강에 진출했고 대학교 땐 대학랭킹 1위를 했죠. 실업초년생 때는 전국 랭킹 2위였는데 지난해부터 전국 1위가 됐어요.”

 그렇다고 그가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건 아니다. 키가 크다는 이유로 체육교사의 눈에 띄어 테니스를 한 이후 그저 노력한 것 밖에 없었다. 힘들 때는 “한 번만 더 해보자”며 자신을 토닥였다. 지난해 초엔 자신은 늘 제자리 걸음인데 남들은 앞서가는 듯해 힘들어 하기도 했다. 적지 않은 나이도 마음에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긍정적인 성격을 믿어보고자 했다. 마음을 다잡고 임한 동계훈련 후 그는 아시안게임 대표선수로 발탁됐다. “동메달을 목에 거는 순간 나도 해낼 수 있구나 생각했어요.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도 얻었죠.”

실업연맹전 휩쓴 양천구 테니스팀

 아시안게임에서 돌아온 후에도 이 선수는 쉴틈이 없었다. 이달 초 수원에서 열린 제2차 한국실업테니스연맹전에도 참가해 단식과 복식 우승을 차지했다. 이혜민(24·양천구청) 선수와 팀을 이룬 복식서 1세트와 2세트 초반까지 밀리는 경기를 했다. 두 게임만 더 지면 경기가 끝나는 2세트 상황. ‘허무하게 질 순 없다’며 의기투합한 두 선수는 연속해 게임을 이기며 역전승을 거뒀다.

 여느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테니스 역시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하다. 이혜민 선수는 “경기 경험이 많은 진아 언니에게 도움을 받는편”이라며 “마음을 비우고 집중하려 항상 노력한다”고 귀띔했다. 8월 상주오픈테니스 대회에서는 그 효과를 톡톡히 봤다. 전국 랭킹 1위인 이진아 선수가 미국에서 열리는 경기에 참가하느라 불참한 틈을 타 이혜민 선수가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이혜민 선수에겐 올들어 처음 우승한 경기였다.

 두 선수의 올해 마지막 목표는 실업마스터드 대회(13~17일)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다. 특히 이진아 선수는 이 대회에서 이기면 국내 전관왕을 이루게 된다. “올해 국내대회와 국내에서 열린 국제대회를 포함해 8개의 단식 우승과 4개의 복식 우승을 했어요. 아시안게임 동메달까지 포함해 선수생활 중 최고의 성적을 이룬 해죠. 기록을 경신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네요.(웃음)”

 1년에 20여 개의 국내외 대회에 참가하는 두 선수는 “바쁜 중이더라도 일반인에게 테니스를 널리 알리는 자리를 갖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여름에는 목동 테니스 동호회 회원들과 친선 게임을 했는데 지역민을 위해 자그마한 일을 한 듯해 뿌듯했다.

 국내에서는 축구나 야구에 비해 비인기종목으로 분류되곤 하는 테니스. “대신 배우려는 사람들은 많다”는 두 선수는 “테니스팀이 있는 학교가 양천구엔 없더군요. 주니어 선수를 육성하거나 일반인에게 테니스를 가르쳐줄 기회가 있다면, 바쁜 시간을 쪼개서라도 참가하고 싶어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사진설명]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딴 이진아선수(왼쪽)가 같은 소속팀(양천구청 테니스단) 이혜민 선수와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이세라 기자 slwitch@joongang.co.kr 사진="최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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