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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로봇과 사랑하는 날 오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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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호 28면

바이센테니얼맨의 한 장면. 주인공 앤드루가 인간의 얼굴을 갖기 위해 기술자를 찾아간다. [중앙포토]

미국의 유명한 발명가이며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그의 저서 특이점이 온다에서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21세기의 절반이 지나기 전에 완전히 새로운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지구 종말의 우려도, 석유고갈이 초래할 에너지 위기도 과학기술의 발전이 다 해결해 줄 것이라고 한다. 인공지능이 발달해 로봇과 인간의 구분도 모호해진다.

영화 속 미래 이야기 과학기술 발달이 가져올 미래

그의 주장의 근거는 마이크로칩의 용량이 매 24개월마다 두 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에서 시작한다. 커즈와일은 책에서 무어의 법칙을 실증적 예와 탄탄한 논리로 증명해 보인다. 과학기술이 기하급수의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이를 근거로 2045년께에는 그 기하급수의 곡선이 거의 수직으로 치솟아 무한대에 가까운 특이점에 이른다고 얘기한다. 그의 책은 황당하게 들리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2005년 출간 직후 뉴욕 타임스의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우리나라에서는 2007년 번역·출간돼 최근까지 5000권 이상(5쇄) 팔려나갔다. 그는 최근 자신의 책을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만들었고, 소노마 국제영화제는 올 4월 그의 작품을 초대작으로 선정, 공개했다. 그는 다큐멘터리에 직접 출현해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면서 사이 사이에 ‘라모나’라는 사이버 여성 캐릭터가 인공지능을 가지면서 스스로 판단하고 인간이 되고 싶어한다는 시나리오를 끼워 넣어 영화적 요소를 가미했다.

커즈와일이 그리는 첨단기술의 미래는 상업 영화에서도 자주 나오는 소재다. 63년 일본에서 나온 만화영화 ‘우주소년 아톰’이 그 원조 격이다. 2003년 도쿄가 배경인 이 영화에는 수많은 로봇이 개발돼 인간의 도우미로 살고 있다. 그중 최초로 인간처럼 감정을 가진 로봇 아톰이 탄생한다. 아톰은 마치 ‘슈퍼맨’처럼 위기에 빠진 인간들을 구하는 역할을 한다.

99년에 개봉된 ‘바이센티니얼맨’은 인간이 되고 싶은 로봇을 그리고 있다. 때는 2005년, 가사용 안드로이드 로봇이 한 가정집에 들어온다. 앤드루란 이름을 가진 이 로봇은 요리·청소는 물론 육아와 어른의 말 상대까지 못하는 게 없다. 게다가 창조력과 학습 능력을 가지고 있어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인간을 닮아간다. 그는 어느 날 자유를 찾아 여행을 떠나게 된다. 도중 인간과 사랑에 빠지고, 우여곡절 끝에 인간으로 인정받고 인간처럼 죽음을 맞는다. 영화는 감성을 가진 인간을 닮고 싶어 하는 로봇에 연민을 느끼게 하는 가슴 찡한 스토리를 담고 있다.

가능한 얘기일까. 일단 영화에서 설정한 시대적 배경과 실제 로봇기술의 발전 속도는 꽤 간극이 있다. 아톰의 시대(2003년)와 바이센테니얼맨의 시대(2005년)는 이미 지났다. 하지만 로봇 기술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일본의 아시모, 우리나라의 휴보는 인간처럼 걷고 뛰며 물건을 집는다. 미국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 ‘빅독’은 살아 있는 생물체 같은 균형감을 자랑한다. 로봇(컴퓨터)이 지식을 기억하고, 계산해 내는 능력은 이미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지 오래다.

커즈와일은 특이점이 온다에서 2020년대 말에는 인간 지능을 완벽히 모방하는 데 필요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모두 갖춰지고, 더 이상 컴퓨터 지능과 생물학적 인간의 지능을 구별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의 예측이 얼마나 정확할까를 따진다면 하수다. 그가 분석한 논리와 혜안을 통해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와 트렌드를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다만 과학기술이 장밋빛 미래를 열어줄 것이라고만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명저 총·균·쇠로 퓰리처상을 받은 UCLA의 석학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기술이 우리의 구세주라고 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기술 발전 그 자체가 현대사회에 엄청나게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면서 “그간 환경문제에서 지켜봐 왔듯 초기에 문제점을 막는 것이 나중에 첨단기술로 문제점을 푸는 것보다 비용이 훨씬 덜 들고,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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