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전장 이탈의 혐의, 흑3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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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본선 16강전> 
●·쿵제 9단 ○·이창호 9단

제3보(29~36)=쿵제 9단은 포석이 강하다. 이세돌 9단이 쿵제를 만나면 초장에 고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판에서도 쿵제의 초반 감각은 꽤 빛난다.

 우선 29와 30은 맞보기. ‘참고도1’ 흑1의 곳도 좋은 곳이지만 그때는 백이 2의 곳을 차지하게 된다. 이 그림은 우변 흑진이 커졌지만 흑▲들이 엷어지는 단점이 있다. 문제는 30으로 왔을 때인데 흑은 어떻게 두어야 하는 것일까. 이창호 9단은 장고 끝에 손을 빼 31에 두고 말았는데(어려우면 손 빼라는 격언이 있다) 이 수에 대한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바둑은 전쟁을 닮은 게임이다. 더구나 지금은 흑진 속으로 막 30이란 낙하산이 출현했고 군사들이 맞부딪치려는 상황이다. 어렵더라도 뭔가 결론을 내야지 피하면 안 된다. 그런 관점에서 31은 ‘전장 이탈’의 혐의를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박영훈 9단은 최선의 대응책으로 ‘참고도2’ 흑1이란 가장 평범한 수를 제시했다. 이후 5까지 받아두고 6으로 달아나면 하변은 그때 두어도 된다는 것. 31을 본 쿵제는 시기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수습에 나섰다. 32가 좋은 감각이어서 36까지 백은 손쉽게 탄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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