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 공부] 수능 점수 받아보셨지요 아이에게 어떤 말 해줄 건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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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수능을 치른 이우진(왼쪽)군과 아빠 이주현씨가 함께 산을 올랐다. 이씨는 아들의 수능 성적 결과와 상관 없이 언제나 든든한 후원자가 되기로 했다. [김진원 기자]

201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결과가 나오는 날이다. 성적표가 배포되는 고3 교실과 수험생 자녀가 있는 가정에선 기쁨의 환호와 안타까운 탄식이 섞여 나온다. ‘수능’을 향해 달려온 수험생과 가족은 이맘때 결과와 관계없이 몸살을 앓는다. 좌절과 불안, 박탈감이 원인이다. 마음을 추스르고 차분히 전략을 수정할 수 있도록 부모가 도와야 한다.

글=박정현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지난달 18일, 수능을 본 이우진(인천외고 3)군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집에 왔다. 이주현(47·서울 강북구)·윤영조(44) 부부는 아들의 시험 결과를 짐작했다. 그냥 “고생했다”고만 말했다. 평소보다 점수가 안 나온 우진이는 부모님께 혼이 날 각오를 했었다. 그리고 일주일. 힘들어 하는 우진이에게 엄마가 “결과와 상관없이 돕겠다”고 말을 건넸다. 우진이는 엄마와 단 둘이 4박5일 여행을 다녀온 후 다시 인생설계를 시작했다. “제가 지금 견딜 수 있는 것은 부모님 때문이에요.”

의도적으로 안아주거나 하면 오히려 역효과

수능 성적표를 나눠주며 교사는 말을 줄인다. 김흥규(서울 광신고) 교사는 “고3 교실마다 희비의 쌍곡선을 그리기 때문에 잘했다는 칭찬도, 힘내라는 격려도 하기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여학생반은 엎드려 우는 학생이 많아 교사들은 벅차다. 그냥 울도록 내버려둔 뒤 그치면 격려의 말을 하는 게 오히려 낫다.

성적표를 받고 집에 온 자녀에게 부모는 “성적이 어떠냐”고 묻지도 못하고 눈치만 본다. 표정 관리도 안 된다. 이보연아동가족상담센터 이보연 소장은 “화가 났을 때 입을 열면 자녀와의 관계를 해치게 된다”며 “혼자 시간을 두고 감정을 추스르며 상황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의도적으로 안아주거나 손을 잡아주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다. 아훈연구소 이민정 소장은 “중요한 것은 말이나 행동이 아니라 부모의 마음가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녀와 마주치기 전 아이가 얼마나 힘들지 헤아리고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부모가 힘들면 동생이나 언니를 시켜 아이의 기분을 물어보는 것이 좋다. 김 교사는 “아이도 부모에게 미안할 텐데 어설픈 위로는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생했으니 외식이나 할까” “푹 자라” 정도로 부모가 자녀의 든든한 후원자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좋다. 다음 계획은 자녀의 표정을 살펴 며칠 미뤄도 된다. 건국대병원 하지현 교수(신경정신과)는 “요즘 청소년들은 크게 좌절했다가도 다시 잘 일어난다”며 “부모들이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현실적인 기대치를 가질 수 있게 도와야

성적표를 받은 후 자녀의 말수가 줄거나 체중 변화가 심하면 ‘수능 후유증’을 의심해 봐야 한다. 대표적인 증상은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해 오는 실망감과 ‘성공후유증’이라고 불리는 허탈감이다. 평소 관심 있던 분야의 운동이나 여행을 하면 도움이 된다. 삼성서울병원 이정권 교수(가정의학과)는 “혼자 하는 운동보다 협동심과 상호 소통이 필요하고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단체운동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최종 대입 합격 여부가 결정되는 1월에 극심한 스트레스와 피로감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는 학부모들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성공후유증도 부모에게 더 잘 나타난다. 이민정 소장은 “‘나’라는 존재가 확고하면 자녀로 해서 흔들리지 않는다”며 “지금 당장은 좌절감과 공허함, 우울이 계속될 수 있지만 계속 마인드컨트롤을 하면 조금씩 좋아진다”고 조언했다.

 병원을 찾는 학생 대부분은 기대치를 너무 높게 잡아 실망이 큰 경우다. 하 교수는 “남은 기간 동안 현실적인 기대치를 가질 수 있게 부모가 도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수능만으로 입시를 치르는 것이 아니므로 성적표를 받은 후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 김 교사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부모가 옆에서 용기를 북돋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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