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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韓美, '노근리'공동조사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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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양국정부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의 진상규명에 나서기로 한 것은 진일보한 사태진전이나 그 진상규명방법을 놓고 엇갈린 방침을 보여 진상규명이 제대로 될지 의문스럽다.

미국 AP통신의 끈질긴 탐사보도로 그 사건의 실체가 처음으로 드러난 지난달말 이후 그 사건과 유사한 것으로 주장되는 미군의 양민학살혐의사건이 전국적으로 잇달아 제기되는 가운데 미국정부가 우리측의 공동조사반 구성 제의를 거부하고,독자 조사에 나섰기 때문이다.

우리는 근 50년만에 처음으로 이루어지는 진상규명 활동이 철저하게 수행되어 노근리를 포함한 양민학살 혐의사건이 앞으로 더이상 논란의 여지를 한미간에 남겨서는 안된다는 전제하에 몇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우리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온적인 대처를 하고 있지않나 하는 점이다.

노근리 사건의 보도가 있은 직후 빌 클린턴 대통령을 포함한 미국정부 관계자들이 진상규명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표명을 했다.그러나 우리 정부는 미국의 반응이 나온 며칠 뒤에야 국무조정실에 진상조사반을 구성하는등 소극적으로 움직였다.정부가 이 문제의 중요성을 확고히 인식해서 미국정부와 적극 교섭했다면 미국측이 과연 각자 조사의 방침을 정할 수 있었을까 의심이 간다.

정부는 전국 각지에서 제기되는 학살혐의사건의 초동조사만이라도 신속하게 해서 그것을 미국측에 제시,그에 관한 공동조사를 통해 이 문제를 매듭짓는 여건을 마련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지금처럼 한·미 양국이 독자조사를 해서 그 결과를 발표했을 경우 그 피해자·유가족은 물론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한다.

정부는 이 문제로 한미간의 우호에 금이 갈까,북한이 이를 악용할까등을 우려하는 듯하나 진상의 철저한 규명과 그에 따른 미국측의 사과와 배상등이 이루어지는 것이 한미우호를 증진하고 반미감정을 오히려 덜 촉발시킬 것임을 유의해야 한다.

미국 행정부는 우리의 공동조사반 운영에 응해야 한다고 우리는 믿는다.미국은 각자 조사하더라도 양측간에 정보공유를 통한 실질적인 공동조사 형태여서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보는 듯하다.그러나 이 조사가 신뢰를 얻기 위한 핵심사항은 조사의 투명성에 있다.조사의 투명성은 관련 전쟁문건은 물론 미군참전병사들의 진실한 증언을 한미 양측이 같이 검색·검증하는 절차를 통해 확보될 수 있다.

미국측이 정보공유를 다짐했지만 자국이익을 위해 선별적으로 자료를 우리측에 넘길 개연성은 여전하다고 우리는 본다.

특히 지난 수십년간 끝없이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진상규명을 촉구해온 피해자와 유족들이 지금과 같은 양측간의 독자 조사방식으로 나온 결론에 수긍하지 못할 경우 이번의 조사도 또다른 의혹을 남길 우려가 있다.

따라서 한미양국은 노근리사건을 계기로 전국에서 제기된 여러 사건도 같이 공동으로 조사해 역사의 매듭을 푸는 진지한 자세를 보여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