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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vs 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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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화장실보다 휴대전화가 더 많은 나라. 바로 인도다. 휴대전화 가입자는 12억 인구 중 절반에 달하는 반면 변변한 화장실을 쓸 수 있는 사람은 고작 3분의 1에 그친다. 대다수 국민에게 기본적 위생 인프라조차 제공하지 못하는 인도 정부의 무능을 꼬집기 위해 올봄 유엔이 발표한 통계다. 뒤집어보면 이 수치는 민간 기업들의 놀라운 능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뒷간도 못 갖추고 사는 빈민층한테까지 전화기를 팔아 치웠으니 말이다.

 “인도 경제는 정부 덕분이 아니라 정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전한다”는 인도 출신 언론인 파리드 자카리아의 말이 과언이 아니다. 비단 화장실뿐 아니라 인도는 열악한 인프라로 악명이 높다. 그걸 극복한 게 기업의 힘이다. “도로·항만이 나빠 물건을 수출하기 힘들면 전선·전화선을 통해 서비스를 수출하면 된다. 정부가 잠을 자는 밤중에 오히려 경제는 성장한다”(구차란 다스 전 프록터 앤 갬블 인디아 대표). ‘세계의 콜센터’라 불릴 만큼 잘 나가는 인도 서비스 산업, 결국 정부 덕(?)을 본 셈일까.

 인도 경제의 진짜 경쟁력은 끊임없이 공급되는 ‘젊은 피’다. 가구당 2.6명의 높은 출산율로 인구의 절반이 25세 이하다. 이와 반대로 역시 인구 대국인 라이벌 중국은 급속히 늙어간다. 2050년이면 65세 이상 노인이 3억 명으로 는다. 선진국이 되기 전에 고령화 국가부터 되는 첫 사례가 될 참이다. ‘세계의 공장’ 노릇 하기도 점점 어려워질 게다.

 “조만간 코끼리(인도)가 용(중국)을 추월할 것”이란 소리가 나돈 이유다. 최근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11년 지구촌 전망’에서 바로 내년이 인도의 경제 성장률이 중국을 앞서는 해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체급’ 차이가 꽤 나는 중국 경제를 따라잡자면 이 속도로 17년은 더 자라야 한다지만 우쭐할 만도 하다. 인도와 달리 정부 주도로 일사불란하게 내달려온 중국 경제가 그만 ‘한 자녀 정책’의 후폭풍에 덜미가 잡혀 주춤할 모양이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세계 유수 기관들이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을 잠식할 최대 복병으로 저출산·고령화를 꼽는다. 이 숙제만 감당하기도 벅찬데 북한 리스크까지 발목을 잡으려 하니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코끼리와 용이 치고받으며 질주하는 모습을 맘 편히 구경할 처지가 아닌데….

신예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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