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 아파트 담장 헐어 한 마을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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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서울 신도림동의 우성아파트 등 5개의 아파트 단지 사이에는 원래 담장이 있었다(위쪽 사진). 녹지사업으로 담장을 허물고 그 자리에 2년6개월간 소나무·느티나무 등 2만6000그루의 나무를 심어 ‘생태 숲 마을’로 다시 태어났다(아래쪽 사진). 관리사무소도 합쳐 한 단지처럼 운영할 계획이다. [서울시 제공]

25일 오전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도림천 인근. 1990년대 지어진 15층짜리 낡은 아파트가 줄지어 서 있다. 도로와 아파트 동 사이에, 단지와 단지 사이에 2~4m 높이의 방음벽·담장이 둘러져 있다. 소음을 막고 방범을 위해 세워놓은 담이 아파트 단지를 나누고 있다.

 그러나 지하철 2호선 도림천역 근처의 우성 1·2·3·5차 아파트, 현대아파트는 다르다. 아파트 벽면에 씌인 이름이 다른데도 단지를 구분하는 방음벽·담장이 없다. 소나무·느티나무·단풍나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곳곳에 벤치도 있고 그늘가림막, 운동시설도 있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 놓인 돌에는 까만 글씨로 ‘생태 숲 마을’이 적혀 있다.

 5개 아파트 단지 12개 동(1144가구)이 담장을 허물어 하나의 마을이 된 것이다. ‘아파트 열린 녹지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서울시가 10억원, 구로구가 3억6500만원을 지원했다. 생태 숲 마을에서는 26일 완공식 겸 마을잔치가 열린다. 2008년 6월 시작해 2년여의 공사기간에 수고한 사람들에게 감사패를 돌리고, 잔치국수를 나눠 먹을 계획이다.

 오해영 서울시 조경과장은 “2005년부터 지금까지 서울시내 아파트 123곳의 담장을 허물었지만 여러 개의 아파트 단지가 함께 담장을 없애 마을을 만든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오 과장은 “조경적인 측면에서 시작한 담 허물기 사업이 삭막한 아파트를 마을 공동체로 되살리는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서울시가 2005년 아파트 열린 녹지 조성사업을 시작할 때, 우성 1·2차 아파트(405가구)가 시범단지로 선정돼 담장을 허문 것이 출발점이었다. 아파트 곳곳에 나무가 심어지면서 낡은 아파트에 활기가 돌았다. 바로 옆 단지인 우성 3·5차, 현대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도 담을 허무는 게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나왔다. 우성 3차 아파트 공덕현 동 대표는 “인근에 새로 지어 잘 조경한 아파트와 허름한 우리 아파트 주민 간에 위화감이 있던 차에 담을 없애 나무도 심고 하나의 마을로 가꾸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어려움도 있었다. 1·2층에 사는 주민들은 “안전에 문제가 있다”며 반대했다. 담을 허문 자리에 심을 나무를 놓고도 단지별로 의견이 갈렸다. 일부 주민은 “공기 정화에 효과가 있는 소나무를 심어 달라”고 졸랐다. 아파트 주민 대표와 조경회사 직원이 도면을 들고 가구를 직접 방문해 단지별로 어울리는 나무를 정했다고 설명했다. 공 대표는 “아파트 전체 주민설명회를 여러 차례 열었고, 아파트별로는 수없이 만났다”며 웃었다. 서울시에 사업을 신청해 2만6000여 그루의 나무가 심어진 생태 숲이 완성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2년6개월. 1년의 공사기간을 제외한 나머지는 ‘주민소통’에 소요됐다.

 주민들은 공모를 거쳐 마을 이름을 ‘생태 숲 마을’로 정했다. 인근의 도림천이 생태 하천으로 되살아난 것을 감안한 것이다. 이 마을은 ‘통합관리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단지마다 별도로 있는 관리사무소를 합쳐 관리비를 절약하기 위해서다.

 우성 2차 아파트에 사는 윤성근(79) 할아버지는 “비록 작은 아파트 단지였지만 담이 있을 때는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의식이 강했는데 5개 아파트가 모여 하나의 마을이 되니 왠지 마음이 든든해지고 가구 수가 많은 아파트가 부럽지 않다”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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