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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11·11 옵션 쇼크, 재발 막을 장치 마련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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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하현옥
경제부문 기자

1분의 미스터리. 외국인의 대규모 주식 매도로 국내 주식시장이 초토화된 11일의 상황을 되짚는 과정에서 ‘운명을 가른 1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선물과 옵션 동시 만기일인 이날 외국인은 도이치증권을 통해 1조6000억원어치의 주식을 매도했다. ‘차익거래 청산’을 위해 대량으로 물량을 내놓은 것이다. 물론 이를 문제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거래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부분이 발견됐다. 프로그램 매매 사전신고 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시장의 혼란을 막기 위해 지수와 옵션 만기일의 동시호가(오후 2시50분~3시) 시간에 프로그램 주문을 내려면 오후 2시45분까지 이를 신고해야 한다. 그런데도 도이치증권은 1분 늦은 오후 2시46분에 매매 신고를 했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53.12포인트 떨어진 1914.73으로 곤두박질쳤다.

 단순 실수나 시스템 오류로 매매 신고가 늦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시장에는 음모론적 관점에서 이날의 상황을 재구성하는 시각도 나온다. 대량의 현물 매도주문을 낸 외국인과 ‘풋옵션(특정 가격에 주식을 매도할 수 있는 권리)’을 산 투자자가 동일인이라는 전제하에 고의로 신고를 늦췄을 수 있다는 가정이다. 다른 투자자들이 오후 2시45분까지 접수된 신고를 확인할 것을 염두에 두고 ‘시간차’ 공격을 했다는 것이다.

 신고 지연으로 야기된 시장의 충격에 비해 처벌은 가볍다. 이날 지수하락에 베팅하는 풋옵션을 샀던 투자자는 최대 499배의 이익을 올렸다. 하지만 신고 조항을 위반한 증권사는 200만원의 약식 제재금만 물면 된다.

 차익거래를 위해 동시호가 때 대량 매물을 쏟아낸 것은 불법도 아니고, 규제를 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가에 대한 논란도 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불법은 아니지만 불공정 거래 아니냐는 것이다. 감독당국이 조사에 나선 것도 그런 혐의가 있다는 얘기다.

 이를 두고 제도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의 지속적인 규제 완화가 불러온 예견된 ‘인재(人災)’라는 주장도 있다. 기관이나 외국인 투자자가 사전 증거금 없이 선물옵션에 투자할 수 있게 되면서 이 시장이 투기장으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제도적 허점이든, 예고된 인재이든 단단히 고치지 않으면 ‘11·11 옵션 쇼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하현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