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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복강경수술, 외국서 들여와 한국서 활짝 꽃 피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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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와 아리랑TV는 공동으로 주요 20개국(G20) 의장국 해를 맞아 5부작 의학 다큐멘터리 ‘메디컬 코리아, 수술(手術)의 힘(Top MDs of Korea)’을 제작했다.

188개국 8250만 시청 가구를 확보한 글로벌 방송네트워크 아리랑TV는 이달 8일부터 매주 월요일 8개 국어로 다큐멘터리를 송출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이 기획의 일환으로 ‘건강한 당신’ 지면을 통해 기획기사를 연재한다.

이번 주제는 2부 ‘암 수술: 암 치료, 미래를 보다’이다. 방송 날짜는 15일(월) 저녁 9시다.

황운하 기자

직장암 로봇수술의 세계적 권위자인 김선한 고려대 안암병원 교수(사진 가운데)가 수술하고 있는 모습. 미국의 로봇수술 개발업체는 김 교수의 수술법을 바탕으로 직장암 로봇수술 지침서를 만들었다. [고려대 안암병원 제공]

8월 3일 오전 10시, 고려대 안암병원 4층 1번 수술실. 외과 김선한 교수팀이 직장암 1기 환자 김성길(남·43·영등포구 신길동)씨의 배에 5~11㎜ 지름의 구멍 6개를 뚫었다. 배를 가르지 않고 로봇을 이용해 수술하기 위해서다. 로봇 직장암 수술은 로봇수술 중에서도 고난도 수술로 알려져 있다. 배꼽 옆 구멍으로 배 속을 들여다보기 위해 카메라를 넣었다. 이어 4개의 구멍으로 절삭기구와 집게가 달린 로봇 팔이 들어갔다. 우선 암세포가 혈관을 타고 다른 곳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직장에 연결된 동맥의 양쪽 끝을 묶었다. 직장을 둘러싼 지방층인 ‘직장간막’에서 직장을 깨끗이 떼내야 할 차례. 그래야 직장이 움직여 암을 절제할 수 있다. 김 교수가 로봇수술기의 콘솔(consol)에 있는 조종간을 이용해 능수능란하게 직장을 분리했다. “직장간막을 잘못 제거하면 막이 터지면서 직장의 암세포가 흘러나와 재발률이 높아져요.”(김 교수) 이후 항문 쪽의 직장을 횡으로 절단해 배에 뚫린 구멍으로 꺼냈다. 종양을 포함해 약 15㎝의 직장을 잘라낸 뒤 다시 배 속으로 집어넣고 스테이플러를 이용해 항문 부위와 이어줬다. 소장에 직장이 아물 때까지 변을 배출할 배변주머니를 달아 주고서야 수술이 끝났다. 오후 1시30분. 수술 후 6일 만에 퇴원한 환자 김씨는 지난 10월 6일 배변주머니를 제거하고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로봇수술, 위·갑상선·산부인과 암까지 확대적용

한국 의사들의 암 수술 실력이 눈부시다. 특히 환자의 배를 열지 않고 구멍 몇 개만 뚫어 종양을 제거하는 로봇수술과 복강경수술은 세계가 인정하는 분야다. 암을 제거하기 위해 배를 10~30㎝를 절개해 출혈이 많고 회복기간이 긴 수술이 점차 줄고 있다.

 환자의 신체에 아예 칼을 대지 않고 무출혈·무통증으로 암세포를 치료하는 감마나이프, 사이버나이프 등 ‘방사선 수술’도 앞서나가고 있다. 이 같은 수술법은 환자의 수술 부위를 최소화하면서 치료 성적도 좋아 환자 삶의 질을 높인다.

 국립암센터 김영우 위암센터장은 “수술 시 수혈을 많이 하면 폐에 물이 차는 폐부종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수술 결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들이 많다”며 “암 수술 시 수혈을 최소화하면 암환자 생존율을 높이고 합병증이 준다”고 말했다.

 암 수술의 방법과 기구들은 모두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에 태동해 들어왔다. 복강경 수술은 약 20년, 로봇수술은 2005년에 한국에 입성했다. 하지만 수술 실력과 치료 성적이 꽃을 피우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는 한국이다.

 로봇수술을 개발한 미국 등에선 전립선·대장암 등에 국한해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위·갑상선·산부인과·이비인후과 암까지 적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로봇수술을 가장 먼저 도입한 세브란스병원은 암 수술의 약 10%(1500건)를 로봇으로 한다. 갑상선·위·전립선암은 30~40%가 로봇수술이다.

 복강경을 이용한 암 수술도 위를 비롯한 대장·갑상선·간·전립선·신장·자궁·난소·폐·식도 등 거의 모든 암에 적용되고 있다. 국내 암 발병 1위인 위암은 약 30~35%가 복강경으로 수술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환자 삶의 질을 높이는 수술의 발전은 수술 성적에도 반영된다.

 복강경 위암 권위자인 분당서울대병원 김형호 교수팀은 2003년부터 최근까지 1500건의 복강경 위암수술을 진행했는데 수술에 따른 사망이 한 건도 없었다. 수술 부위 감염, 출혈 등 수술에 따른 합병증 발병률도 11%로, 개복수술의 15%보다 적다.

 ‘2009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대장·간·자궁경부·갑상샘·유방·폐·췌장·전립선 등 주요 9대 암의 생존율도 미국보다 앞서거나 대등하다. 국내 발병 1위인 위암의 2003~2007년 5년 생존율은 61.2%로 미국(1999~2005년)의 25.7%보다 두 배 이상 높다.

한국의사는 ‘걸어다니는 암 수술 교과서’

한국 의사들의 암 수술을 배우려는 세계 의사들의 행렬이 늘고 있다. 한국 의사가 시연하는 라이브 암 수술이 진행되는 곳에는 빈자리가 없다. 해외 유수의 병원에 초청교수로 가기도 한다. 한국 의사들이 ‘걸어다니는 암 수술 교과서’인 셈이다.

 로봇 직장암 수술 권위자인 고려대 안암병원 김선한 교수는 세계 최고 의료기관인 미국 메이요클리닉, 클리블랜드클리닉 등의 초청으로 수술을 생중계 했다. 김 교수는 현재 세계대학 순위 33위이며, 대장항문외과 분야에서 아시아 최고 수준인 싱가포르 국립대학에의 초빙교수로 로봇수술을 전하고 있다.

 수술 로봇을 개발한 미국 인튜이티브사는 2008년 김선한 교수의 수술법을 바탕으로 직장암 로봇수술 지침서를 냈다.

 김선한 교수가 진행하는 로봇 직장암수술은 로봇수술 중에서도 고난도 수술로 알려졌다. 선진국에서도 소수의 의사만 진행한다. 직장은 골반 안에 숨겨진 어둠 속의 장기여서 수술 시야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은 자궁과 질, 남성은 전립선·방광·정낭 등 많은 장기에 둘러싸여 있다. 성 기능과 관련된 신경도 있어서 이것들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수술하는 것이 핵심이다.

 김선한 교수는 “의사가 숙련이 안 돼 있으면 로봇이 아무리 좋아도 기능을 발휘 못한다”며 “의사의 손기술이 가장 중요해 한국 의사들이 로봇수술에 뛰어나다”고 말했다.

 국내 암 발병 1위인 위암수술도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한 수 가르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김형호 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복강경 위암 절제수술의 경험이 있다. 김 교수는 세계 최초 한 해 500례 복강경 위암수술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그의 기술을 배우기 위해 매년 해외에서 많은 의료진을 파견한다. 올해 5월에는 김 교수의 수술법이 태국에서 열린 국제소화기종양외과학회 연수강좌 프로그램에 지정되기도 했다.

 김형호 교수는 “복강경 위암수술이 배를 여는 개복수술과 동일하거나 더 좋은 치료 효과를 얻으면서 환자의 회복이 빠르다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국내 갑상선암 수술 1세대인 가천의대 길병원 외과 이영돈 교수(대한감상선내분비외과학회장)는 갑상선암의 내시경 수술로 유명하다. 갑상선암은 여성암 발병률 1위다. 이 교수는 한 해 약 700 건의 갑상선암 수술 중 3분의 1을 내시경으로 한다. 갑상선암의 내시경 수술은 암 크기가 1㎝ 이하고, 림프절 등에 전이가 없을 때 적용한다. 겨드랑이나 젖꼭지 주위를 절개한 후 이곳을 통해 수술한다.

 이 교수는 “한국 의사들은 부갑상선과 후두신경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갑상선과 림프절을 잘 제거한다”며 “젊은 한국 여성들은 서양여성에 비해 켈로이드 등 수술 후 흉터가 더 크기 때문에 내시경 수술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감마나이프 치료성적 세계 최고수준

“사시는 곳의 주소를 대보세요.”(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김동규 교수)

 “서울시 성북구 동소문동….”(환자 변상동·여·60)

 “손을 쥐었다 폈다 해보세요. 오른팔이랑 다리 느낌 괜찮아요?”(김 교수)

 “네.”(변상동)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김동규 교수가 교모세포종(뇌종양의 일종) 환자에게 어웨이크(awake) 수술을 하는 모습이다. 머리에만 부분 마취를 한 후 두개골을 연 상태에서 환자를 깨워놓고 한다. 뇌의 전두엽은 기억·사고·운동, 측두엽은 청각·언어, 후두엽은 시각을 관장한다.

 김동규 교수는 뇌종양 수술 전문가이면서 수술 없이 방사선으로 뇌종양을 제거하는 감마나이프 수술의 권위자다. 감마나이프는 방사선의 일종인 감마선을 이용하는 ‘방사선 수술’이다. 돋보기가 햇빛을 한 점으로 모으듯 201개의 감마선을 뇌종양에 집중해 암을 태운다. 정상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 부작용이 적고, 무출혈·무통증이어서 곧바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

 김 교수는 “뇌에 생긴 종양을 제거하다가 뇌에 손상을 주면 반신불수·시력손실·언어장애 등 해당 부위와 관련된 기능에 돌이킬 수 없는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며 “3㎝ 이하 크기의 뇌종양은 감마나이프를 통해 치료하면 부작용을 줄이면서 치료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감마나이프는 특히 폐·유방·대장·신장암에서 전이된 뇌종양에 좋다. 임상연구를 통해 생존율이 4개월에서 1년으로 늘었다.

 김동규 교수팀은 한 해 600건의 감마나이프 수술을 하며 치료 성적도 세계 톱이다. 김동규 교수 등이 2008년 국제방사선종양학회지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감마나이프수술 치료 성적이 96.3%로, 세계 최고의 감마나이프 시술 병원으로 알려진 피츠버그대병원 더글러스 콘드지올카 교수팀의 97%와 차이가 없었다.

 국내에는 약 16곳의 병원에서 감마나이프 시술을 하고 있으며, 치료 성적은 모두 선진국 수준에 올랐다. 사이버나이프·토모치료·양성자치료 등 방사선 치료도 암 치료에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대한암학회 노성훈 이사장은 “우리나라는 국토가 크지 않고 IT기술이 발달해 신의료 기술에 대한 정보접근이 용이하다”며 “학술대회, 라이브 수술을 통해 새로운 암 수술법을 빨리 익히고 수술 성적도 우수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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