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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일정에 담긴 아시아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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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그린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고문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인도·인도네시아를 거쳐 서울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일본 요코하마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 이르는 10일간의 아시아 순방 일정을 밟고 있다. 이번 순방은 오바마 정부 아시아 정책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지난해 그는 확실한 전략적 우선순위나 메시지 없이 아시아를 방문했다. 하지만 이번엔 좀 더 세련되고 효율적인 전략을 갖고 아시아를 찾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지난해 11월 아시아 방문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미·중 관계에 대한 혼란스러운 속내를 노출한 것이었다. 특히 베이징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발표한 양국 공동선언이 그렇다. 공동선언문에는 양국이 서로의 핵심 이익과 주요 관심사를 존중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방중을 앞두고 오바마는 달라이 라마와의 만남과 대만과의 무기거래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은 이를 통해 중국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타협하겠다는 암시를 보낸 셈이다. 이는 중국이 천안함 사건과 남중국해·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영토분쟁 문제에 불필요할 정도로 강하게 대응하는 데 일조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과의 외교 협력, 한국·일본과의 끈끈한 동맹을 통해 중국에 대한 접근법을 변화시켰다. 이런 변화는 아시아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건재한 미국의 힘을 중국에 보여주는 효과도 낳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순방 일정은 중국을 경계하는 중국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오바마 정부는 중국에 대해 간접적인 견제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는 외부의 시각을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인도 방문에는 고도의 전략적인 접근법이 담겨 있다. 인도 정부는 지난해 오바마의 방중 당시 발표된 “양국이 앞으로 남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이라는 미·중 공동성명에 분개했다. 당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문제에서 중국의 더 큰 협조를 얻어낼 의도였다. 하지만 인도 입장에선 오랜 세월 인도에 우선순위를 둬온 미국이 전략을 바꿨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오바마는 인도가 중국에 밀렸다는 인상을 지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인도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하는 전례 없는 선언도 했다. 이를 통해 인도와의 전략적 관계를 재확인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인도 의회 연설은 그가 대(對)아시아 외교 기준으로 미국의 비전을 강조하기 시작했다는 측면에서 주목해야 한다. 오바마 행정부는 집권 초기 민주주의 증진이라는 이슈를 멀리했다. 부시 행정부가 어젠다로 ‘자유’를 내건 데 대한 반작용이었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인권은 전통적으로 미국의 대아시아 외교 정책의 중심축이었고, 이 지역 평화와 번영의 결정적인 변수였다. 이번 연설은 그가 미국 외교 전략의 전통적 요소를 다시 채택했음을 보여줬다. 한편 인도네시아 방문은 아세안과의 관계 강화 전략을 반영한다. 전임 부시 행정부는 라이스 당시 국무부 장관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두 차례 불참한 이후 집권 후반 2년간 동남아 지역에서 고전했다. 힐러리 클린턴 현 국무부 장관은 ARF에 참석하고, 미·아세안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동아시아 정상회담에 참석함으로써 이 지역에서 미국의 신뢰도를 올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오바마 정부의 대일 관계도 훨씬 나아졌다. 지난해 예측할 수 없는 지도자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아래서 기능 장애와 포퓰리즘에 빠진 민주당 정권을 상대할 때는 미·일 동맹의 뿌리가 흔들렸다. 이번 방일에선 실용주의자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를 만난다. 민주당 정권은 정치적으로는 약세이나 자민당 정권 때보다는 미·일 동맹 강화에 더 주력하고 있다. 동맹관계 회복은 일본 대중의 공감 덕이지만, 일본 정부를 참고 기다려준 오바마 행정부 덕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한국이 있다. 지난해 오바마 대통령은 확고한 한반도 전략 없이 서울을 방문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정상회담과 천안함 사건 후속 조치를 통해 오바마 대통령을 놀라게 했다. 오바마는 동아시아 지역과 다자간 외교 무대에서 증대된 한국의 외교적 역할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성공적인 재협상을 확신하며 서울을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 방문 중 FTA 체결에는 실패했다. 만약 오바마 정부가 FTA를 결국 성사시키지 못한다면 그의 아시아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진전을 이룩할 기회를 놓치는 셈이 될 것이다.

마이클 그린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