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왕실의궤 협상 ‘절반의 성공’이 남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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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김현기
도쿄 특파원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은 지난 18년간 문화재 반환운동에 전념해 왔다. 박 원장이 9일 전한 이야기 한 토막.

 올 8월 간 나오토(菅直人) 일 총리가 “조선총독부를 통해 반출돼 일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한반도 유래 도서를 인도한다”는 담화를 발표한 뒤 양국 간 협상은 시작됐다. 먼저 일 궁내청에 소장된 제실도서(帝室圖書)의 반환을 놓고 양측의 논리전이 벌어졌다. 제실도서는 조선의 의학·관습 등을 소개한 책이다. 한국 정부는 “궁내청 소장본에 ‘제실도서지장(帝室圖書之章)’이란 붉은 도장이 찍혀 있는 것으로 봐 이 책들이 일제 강점기에 대한제국 제실도서관과 규장각에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붉은 도장은 1909년 전국에 흩어져 있던 제실도서를 한 곳에 모아 찍었다. 그러니 일 궁내청에 있는 것들은 1910년 이후 조선총독부를 거쳐 나갔다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웬걸. 일 궁내청의 제실도서에 찍힌 도장은 현재 한국에 보관돼 있는 제실도서의 그것과 모습이 달랐다고 한다. 일 정부는 “식민통치 이전에 한반도에서 건너온 것이며, 1903년부터 우리가 ‘제실도서지장’이란 자체 도장을 만들어 찍었다”며 증거자료를 들이댔다. 식민통치 이전에 건너온 것이니 이번 반환 대상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 정부는 반박할 논리나 증거도 없었다.

 정확한 유출 경위 파악이나 자료 분석 없이 나선 한국과, 빠져나갈 구멍을 다 만들어 놓고 논리적 대응에 나선 일본의 협상은 이미 시작 전부터 승부가 정해져 있었던 셈이다.

 “반 컵의 물이라도 마시는 게 낫다”는 한국 정부의 외교적 입장을 이해한다. 민간이 아닌 정부 간 협상을 통해 이렇게 빨리 문화재를 돌려받게 된 것도 국제사회에서 드문 일이다. 기쁜 일이다. “중앙일보 보도(3월24일자 1면)가 이번 문화재 반환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축하전화가 여러 통 걸려왔다. 하지만 뭔가 찜찜한 마음을 걷을 수 없다. “일본 측의 설명에 우리 측 전문가들이 납득했다”는 한국 외교부 당국자의 발표가 마음에 걸려서다. “한국 측의 설명에 일본 측 전문가들이 납득했다”는 외교 당국자의 말을 듣고 싶은 게 한국 국민의 마음일 게다. ‘절반의 성공’이 남긴 교훈이자 과제다.

김현기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