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실패한 선수들 춤추게 했더니 대형사고 치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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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 새내기 감독 박경훈(49·제주 유나이티드·사진)이 대형 사고를 쳤다. 지난 시즌 15개 팀 중 14위였던 제주를 2010년 정규리그 2위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사실 박 감독은 큰 실패를 겪은 지도자다. 그는 2007년 윤빛가람(경남)이 뛰던 청소년 대표팀을 이끌고 국내에서 열린 U-17 월드컵에 출전했다. 대한축구협회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훈련했던 박경훈팀은 조별예선에서 탈락했다. 그는 당시의 실패가 지도자 인생에 큰 경험이 됐다고 한다. 지난해 말 제주를 맡은 박 감독은 자신처럼 실패를 맛본 선수들을 데려왔다. FC 서울에서 주전 경쟁이 힘겨웠던 골키퍼 김호준과 중국으로 떠났던 골잡이 김은중, 수원에서 주로 벤치를 지켰던 박현범과 배기종 등. 이들은 ‘동병상련 감독’의 지도 아래 자신감을 되찾았다.

 박 감독은 선수들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배기종은 “이렇게 부드러운 감독님은 처음 봤다”고 놀랐을 정도다. 박 감독은 “나는 선수들이 실수해도 혼내지 않는다. 비디오도 선수들이 잘한 부분만 강조해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어 “실수를 지적하다 보면 경기장에서 위축되게 마련이다. 창의적인 플레이를 위해서 자신감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화내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박 감독의 칭찬은 실패한 선수들도 춤추게 했다. 김은중은 13골·9도움으로 생애 최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김은중은 “감독님을 만나 내 실력이 크게 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감독님은 경기장에서 내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게 해 주셨다”고 고마워했다.

 또 박 감독은 선수들을 신뢰했다. 그는 “아마 제주가 15개 구단 중에 훈련을 가장 적게 시킬 것이다. 골대 맞히기와 볼 돌리기 등 놀이식 훈련을 먼저 하고 중요 훈련은 10~15분 정도만 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주중 경기가 없으면 2박3일 휴가를 줬다. 훈련 양이 적고 휴식시간이 많으니 선수들은 당황했다. 제주 구단 관계자는 “제주도에서 따로 할 일이 없다. 결국 선수들이 부족한 훈련을 찾아서 스스로 하더라”고 귀띔했다. 박 감독은 선수들에게 매달 목표 승점을 제시했다. 매달 어느 정도 승점을 따낼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심어준 것이다. 박 감독은 “9월을 제외하고 목표 승점을 초과 달성했다”고 뿌듯해 했다.

 마지막 비법은 ‘패배의식 걷어내기’였다. 박 감독은 “시즌 초에는 우리 팀 전력이 상대보다 약하다고 생각했다. 전술도 상대 키플레이어를 막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시즌 초 5~6경기를 치르니 제주가 순위표 상단에 있었고, 상대가 우리를 분석하고 있었다”고 기억을 되살렸다. 그는 “아차 싶었다. 우리가 강팀이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우리 플레이를 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제주는 28경기 동안 3패만 했다. 박 감독은 이제 당당히 말한다. “우리 목표는 우승이다. 선수들도 준비가 돼 있고 자신 있다.”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제주는 28일 홈에서 준플레이오프 승자와 경기를 갖는다.

제주=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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