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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손재주, 학구열 … 생체장기이식 ‘세계 최고수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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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2일 오전 8시20분, 서울대병원 2층 수술실. 서경석 교수팀이 이만덕(남·54·서울 중랑구)씨의 간·신장 동시 이식수술 준비로 분주하다. 이씨는 B형 간염으로 간암이 찾아왔고, 만성 신부전까지 겹쳐 혈액 투석을 받고 있었다. 다행히 이씨의 조카인 이희제(남·28·경기도 의정부), 이현정(남·39·경기도 부천)씨가 각각 간과 신장을 기증해주기로 했다. 먼저 조카 이희제씨의 간 65%를 떼냈다. 간 공여자의 합병증을 막기 위해 혈관과 담즙이 나오는 담관을 충분히 확보했다. 오전 11시30분쯤 이만덕씨에게 조카의 간이 이식됐다. 현미경을 이용해 간정맥과 간문맥(장과 간을 연결하는 혈관)을 연결하자 간에 핏기가 돌았다. 이어 간동맥과 담관도 이었다. 서 교수는 “간의 혈관 지름이 2~3㎜에 그쳐 잘 이어주는 게 수술 성공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간이식이 끝난 오후 4시쯤 하종원 교수팀이 조카 이현정씨의 신장 하나를 떼 이씨에게 이식했다. 정맥·동맥·요관이 성공적으로 연결됐다. 11월 현재 이씨와 조카들은 모든 건강수치가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

뇌사자 기증 부족 … 생체이식에서 돌파구 찾아

서울대병원 서경석 교수가 수술용 확대경인 루페가 달린 안경을 쓰고 지름 2~3㎜의 간동맥을 잇고 있다.

‘현대 의학의 ‘꽃’ ‘종합예술’ ‘결정판’…. 장기 이식수술에 붙는 수식어들은 화려하다. 간·신장·췌장·심장·폐 등 장기들이 기능을 상실해 생명을 위협할 때 다른 사람의 건강한 장기를 이식해 두 번째 삶을 열어주는 수술이기 때문이다.

 장기 이식수술이 성공하려면 감염·소화기·순환기내과, 외과, 방사선과, 진단검사의학과, 병리과, 영양학 등 모든 분야가 고루 발전해야 한다. 장기 이식술 성적이 우수한 국가는 의료 수준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세계가 한국 장기 이식수술에 주목하고 있다. 약 20년 전만 해도 국내 의사들은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을 찾아 어깨 너머로 이식수술을 익혔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 의사들이 선진국에 한 수 가르치고 있다. 미국 최우수 의료기관인 존스홉킨스병원의 로버트 몽고메리 교수 등 장기 이식분야 대가들이 2005년 한 달간 삼성서울병원을 찾았다. 조재원 교수에게 생체 간이식수술을 배우기 위해서다. 몽고메리 교수는 10여 년 전 삼성서울병원 이식분야 교수들에게 장기 이식수술을 연수시킨 스승이다. ‘청출어람’이다.

동서신의학병원 김기택 교수팀이 척추측만증 수술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 박정우]

 2008년 12월 미국 ABC방송 뉴스는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를 소개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생체 간이식수술 실력을 갖춘 이승규 교수 간이식팀의 성공요인을 집중 조명했다. 뉴스는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을 ‘한국의 드림팀’ ‘세계 최고의 간이식팀’이라고 극찬했다.

 우리나라는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간·신장 등을 떼내 이식하는 ‘생체 장기이식’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뇌사자 장기기증이 해외보다 턱없이 부족한 환경 탓에 찾은 돌파구지만 해외 의료진이 부러워하는 분야다.

 대한이식학회 조원현 이사장(동산의료원 장기이식센터장)은 “암이 환자 개인의 병이라면 생체 장기이식은 장기를 기증한 사람과 받는 환자 모두를 건강하게 살려야 하는 고도의 의술”이라며 “한국 의사는 타고난 손재주, 학구열, 집중력으로 단기간에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고 말했다.

 국내 병원들의 장기 이식수술 성적은 선진국을 앞선다.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의 2008년 연보에 따르면 신장과 간의 생체 이식 후 5년 생존율은 각각 93.8%, 77.9%다. 미국의 80.2%, 68.6%보다 우수하다. 뇌사자로부터 이식받은 신장·간장·췌장·심장의 5년 생존율도 각각 86.5%, 70.4%, 78.6%, 72.4%로 미국을 앞선다.

간암환자 많아 간 이식 기술 독보적

세계적으로 가장 보편화된 장기 이식술은 신장이다. 국내에서도 60여 곳의 병원에서 진행하며 수술 건수도 가장 많다. 간·심장·췌장·폐가 뒤를 잇는다.

 이 중 국내 간암 이식수술 실력은 ‘독보적’이다. 간이식술은 미국·호주·브라질에서 먼저 시작해 일본에서 꽃을 피웠다. 하지만 지금은 살아 있는 사람의 간을 이식하는 ‘생체 간이식’ 실력이 우월한 우리나라가 주름잡고 있다.

 서울대병원 서경석 교수는 “우리나라는 간염·간암 환자가 많아 의사들이 간 해부에 밝고 손기술이 좋아 미세혈관 연결에도 천부적인 소질을 갖고 있다”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세계 처음 간 공여자에게 복강경으로 수술을 했고, 1998년 뇌사자의 간을 두 사람에게 나눠 이식하는 ‘분할 이식술’에 성공했다.

  국내 췌장 이식수술의 70%를 소화하고 있는 서울아산병원 한덕종 교수는 “췌장 이식은 선천성 당뇨병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생명을 구하는 수술”이라며 “아산병원의 최근 5년간 췌장 이식수술 성공률은 100%”라고 말했다. 한덕종 교수는 지난해 생체 신장과 뇌사자의 췌장 동시 이식에 성공했다.

 폐 이식은 고난도 수술이다. 지난해 12월 국내 처음 한 환자에게 두 차례에 걸쳐 양쪽 폐를 이식하는 데 성공한 강남세브란스병원 백효채 교수는 “폐 이식은 기관지, 심장의 좌심방과 폐정맥, 폐동맥과 폐동맥을 잘 이어주는 게 관건”이라며 “다른 장기들은 이식 후 봉합하면 외부에 노출되지 않지만 폐는 호흡을 통해 곧바로 외부와 접촉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장기 이식술은 최근 20년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뇌사자 장기기증 활성화라는 숙제가 남았다. 대한이식학회 조원현 이사장은 “국내 뇌사자 장기기증자는 100만 명당 2.9명으로 스페인 34.8명, 미국 26.7명, 독일 14.8명보다 한참 부족하다”며 “장기이식 대기자를 살리고, 우리나라 이식술이 더 발전하려면 뇌사자 장기기증이 늘어야 한다”고 말했다.

글=황운하 기자
사진=프리랜서 박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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