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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스타 꿈꾸는 속옷 모델 둘러싼 이글거리는 욕망, 맹목적인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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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그대를
잃은 날부터
최인석 지음
자음과모음
352쪽
1만2000원

중견 작가 최인석(57·사진)씨의 아홉 번째 장편소설이다. 제목과는 반대로, 성격과 가치관이 천양지차인 남녀가 우여곡절 끝에 ‘진정한’ 이해와 소통에 이르게 되는 행복한 결말의 사랑 얘기다. 카피레프트(copyleft), 지적재산권은 공유해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컴퓨터 해커로 활동하는 시나리오 작가 준성과 스타를 꿈꾸는 속옷 모델 서진, 두 남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욕망과 허상을 확대 재생산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서진으로 인해 발생하는 에피소드들은 상상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온갖 병폐를 아우른다. 스타 지망 여성들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영상 산업계의 그늘, 물리적 협박으로 흐르기 일쑤인 사채업자들의 냉혹한 빚 독촉, 마약까지 등장하는 난교파티 등. 어찌보면 뻔하고 통속적인 소재들이지만 작가 특유의 입심 덕에 빠르게 읽힌다. 닳고 닳은 그렇고 그런 얘기지만 결말을 보고 싶은 호기심을 자극해 끝까지 읽게 만드는 지도 모른다.

 시원한 생맥주 한 잔이 절실한 한 여름 대낮, 습관처럼 동료 해커들이 아지트로 활용하는 카페 ‘원더앤원더’에 들른 준성 앞에 묘령의 여성이 나타난다.

심신에 커다란 충격을 받은 듯 창백한 표정의 여성이 요구하는 것은 뜻밖에도 자신의 집으로 데려다 달라는 것이다. 서진을 만나게 된 계기다. 피가 끓는 두 청춘은 쉽게 연인 사이로 발전해 결국 한집 살림을 하게 된다. 더욱 놀랄 일은 무심코 케이블 TV를 시청하다 속옷을 선전하는 서진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다.

 소설은 서진이 일으키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준성이 묵묵히 뒷처리해 나가는 과정이 뼈대다. 맹목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준성의 내면은 불투명하다. 어쨌든 서진은 그런 준성의 사랑에 ‘신파적’으로 감동해 서서히 인생관이 바뀌게 된다. 명품 의류를 마다하고 청바지에 스웨터를 애용하게 되는 식이다. 가볍게 읽히면서 남는 것도 없지 않은 소설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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