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이 사람] 임방울 수퍼스타 소리꾼의 맨얼굴을 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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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임방울
전지영 지음
을유문화사
260쪽, 1만5000원

‘쑥대머리 귀신 형용 적막 옥방의 찬 자리에/생각난 것이 임뿐이라/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 낭군 보고지고.’

 춘향가 중 ‘쑥대머리’는 여인의 그리움을 가장 잘 그린 판소리의 한 대목으로 꼽힌다. 판소리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도 이 곡조 만큼은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대목을 춘향가에 넣어 부르는 소리꾼이 그렇게 많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슬픈 곡조의 달인’ 임방울(1904~61) 명창이 히트시키기 전까지의 일이다.

‘슬픈 곡조의 달인’이라 불린 임방울(본명 임승근·1904~61). 판소리 ‘춘향가’ 중 ‘쑥대머리’로 유명한 그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시기에 높은 인기를 누렸다. [을유문화사 제공]

 임방울 명창은 청중을 울리고 웃기는 탁월한 소리꾼이었다. 특히 서양음악의 단조와 비슷한 ‘계면조’에 능했다. 소리의 미세한 표현과 화려한 기교로 귀를 황홀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판소리꾼이 스타였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 임방울은 그야말로 ‘슈퍼스타’라 할만했다. 그가 자신의 소리에 맞게 손질해 부른 ‘쑥대머리’는 임방울 이후 춘향가에서 빠지는 일이 없었다.

 인기 스타에게는 신화가 덧씌워지게 마련. 신화와 진실이 뒤섞여 존재하는 스타의 속성을 책은 파헤친다. 신화와 진실을 분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전설은 이런 식이다. ‘슬럼프를 겪던 임방울이 각고의 노력 끝에 목소리를 되찾았다. 이를 시험해 보기 위해 물이 콸콸 흐르는 구멍에 머리를 집어 넣고 소리를 했더니 물살이 거꾸로 올라왔다.’ ‘아주 더운 여름날에 소리 스승인 임성준이 잠시 자리를 비웠다. 제자들은 모두 놀았으나 임방울만은 자리를 지켰다.’ 저자는 이같은 얘기들의 근거를 추적한 후 “당대 스타의 뛰어남을 표현하기 위해 다소 과장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신화에 가린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저자가 찾은 임 명창의 진짜 모습은 전통과 근대가 자리를 교체하는 혼돈의 시절, 우리 소리의 완성을 위해 몸부림치던 광대의 모습이다.

 판소리 음반을 내는 것이 식민 통치의 자금 조달에 이용됐던 일제 시대에 첫 음반을 녹음하던 일, 해방 후 전통에 대한 관심이 오히려 소홀해지던 시절 새롭게 ‘떠오르던’ 장르인 창극 대신 판소리를 고수했던 사실 등을 책은 담담히 전한다. ‘기생과의 소설 같은 사랑’과 ‘피를 토하는 훈련’ 같은 환상적인 이야기는 사실을 드러내려는 이 책에서 부각되지 않는다. 대신 명창의 소리를 묘사하는 대목 만큼은 충분히 낭만적으로 그렸다. 팍팍한 다큐멘터리라고 지레 짐작할 필요는 없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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