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공사 이사회 오강현 사장 해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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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31일 주주총회를 앞두고 가스공사 이사회가 14일 오강현(사진) 사장에 대한 해임 결의안을 갑자기 통과시켜 논란이 일고 있다.

이사회는 특히 오 사장이 가스업계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스페인 출장 중인 사이 해임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가스공사 노조는 사외이사로 구성된 이사회가 오 사장 해임안을 결의한 것은 산업자원부의 압력 때문이라며 법적 대응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31일 주총에서 해임 결의안이 통과되지 못하도록 물리력을 행사하겠다는 입장까지 밝히고 있다. 만일 31일 주총이 노조의 방해로 무산될 경우 사태는 복잡해진다. 가스공사의 회계연도가 3월 말로 끝나기 때문에 이날 주총에서 재무제표가 통과되지 않으면 상장이 폐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사장 해임 이유는=이사회가 내세운 이유는 대략 네 가지다. 첫째는 가스가 남거나 부족할 때 수시로 일본과 가스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는 스와프 계약을 불리하게 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민영발전소 사장들과 평일 골프를 친 게 감사원에 적발됐고, 셋째는 4조3교대로 돌아가게 돼 있는 가스보급소의 근무방식을 5조3교대로 바꿔 인건비 부담을 늘렸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론 노조가 평일에 가스산업 구조개편에 반대하는 집회를 했는데도 책임자를 징계하지 않은 게 꼽혔다.

그러나 노조는 올 초 감사원이 5조3교대 근무가 부당하다고 지적해 지난 4일부터 4조3교대로 환원했고, 평일 골프 역시 영업활동의 연장선이었기 때문에 해임의 사유가 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 이번 해임 결의안은 오 사장이 노조 편을 들고 있는 데 대한 산자부의 징계 성격이 짙다는 게 노조의 해석이다. 지난해 10월 가스공사 노조원들의 방해로 국정감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 했으나 오 사장이 미온적으로 대처한 것도 '괘씸죄'를 샀다는 것이다.

◆숨은 이유는 가스산업 구조개편=오 사장의 해임 뒤에는 가스산업 구조개편을 둘러싼 산자부와 가스공사 노조의 힘겨루기가 숨어있다. 산자부는 가스산업에도 경쟁을 도입해야 한다며 가스 도입 부문을 공사에서 떼 민간에 분할 매각할 방침이다. 지난 2월 발전용 가스를 한전 등이 직접 도입할 수 있도록 가스공사와 입찰 경쟁을 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노조는 이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가스 도입은 일괄 계약하는 게 유리하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국정감사를 봉쇄했던 것도 가스산업 구조개편을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산자부로선 구조개편을 밀어붙이기 위해 노조를 다잡을 필요가 있었고, 이에 소극적인 오 사장을 경질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사회가 주총 날짜를 회계연도 마지막 날인 31일로 잡은 것은 배수진을 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만약 노조가 주총을 방해하면 상장이 폐지될 수 있어 섣불리 주총 봉쇄에 나설 수 없으리란 계산이다.

18일 귀국하는 오 사장이 자진 사퇴를 한다면 파국은 피할 수 있겠지만, 정부와 노조 간 힘겨루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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